김선일씨의 피랍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는 AP통신의 주장이 25일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외교부는 국가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고 관련자 문책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외교부는 통화사실을 이날 오전에 확인하고서도 오후 대변인 브리핑 때 이를 숨겨 조직적으로 은폐를 기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받게 됐다.무엇보다 외교부는 이번 파문으로 국가적 신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 AP통신측이 전날 "지난 3일 서울지국 기자가 이라크에 있는 한국인 김선일씨의 실종 여부를 문의했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한 뒤 수 차례에 걸쳐 이를 강력히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교부는 자체 조사에서 통화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브피링을 통해 AP측에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발언만을 쏟아냈고, 통화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자진공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온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문제의 처리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이 명백해졌지만 이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이날 밤 반기문 장관이 청사를 나서며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남긴 게 전부였다.
이에 따라 자국민 보호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비판은 물론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가중될 전망이다. 사실상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제보를 외교부가 묵살했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요로에서 외교부 직원과 AP측 사이의 통화사실을 인지한 뒤 즉각적인 공개를 막고 시간을 벌기 위해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나서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김씨의 참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중요한 정보를 묵살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졌고 관련자는 물론 반 장관 등 고위간부들의 문책도 불가피해졌다. 외교부 스스로 "AP측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해온 데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그냥 덮어둘 경우 여론의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관가에서는 반 장관과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직간접적인 사임설까지 나돌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이달 말로 예정된 개각 때 외교안보팀 전반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대폭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8일 최종 확정된 이라크 추가파병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정부가 장담해왔던 이라크 현지에서의 '안전'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져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정치권 내에서도 파병 반대여론이 더욱 확살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정보력과 외교능력, 교민 안전대책 등에 대한 총체적 불신도 가중될 것으로 보여 이미 확정된 추가파병 계획을 마냥 밀어붙일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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