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사건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과 비난 여론이 대두되면서 며칠째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세종로 외교부 청사는 25일 오후 AP통신측으로부터 지난 3일 김씨 실종 여부를 문의받은 외교부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반기문 장관은 물론 최영진 차관과 관련 실·국장 등이 문책인사를 당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면서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 듯했다.
평소 외부와의 접촉이 잦은 공보관실과 재외국민영사국 관계자들은 25일 온종일 전화를 받는 것조차 꺼리는 모습이었고 과장급 이상 간부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예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이라크지역을 책임지는 아프리카·중동국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AP측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진 사무관들의 소속부서인 공보관실과 아·중동국 관계자들은 언론과의 접촉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다른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향후 사태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전날부터 업무와 관련된 외부전화에 대해 개인별로 통화내역 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한 공보관실의 한 관계자는 "이유야 어찌됐든 AP측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이번 사태에 따른 후폭풍의 강도가 얼마나 될 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중동국의 과장급 관계자도 "오늘도 관련부서 직원 40여명을 대상으로 AP측과의 통화 여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지만 사실이 확인된 줄은 미처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이날부터 시작된 감사원의 특별감사는 외교부 직원들을 더욱 위축시키는 듯했다. 한 과장급 인사는 "감사 결과에 상관없이 전문적인 특정업무에 대해 외부기관의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공직사회 내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의 자존심이 이번 사건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청사 내 휴게실과 사무실 등지에서는 오후 들어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인책론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직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특히 이날 저녁 AP측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 뒤에는 아예 외교수장인 반 장관은 물론 김씨가 이미 살해된 시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희망'을 언급했던 최 차관의 경질을 기정사실화는 듯한 분위기였다.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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