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범죄칼 마르크스·이승은 옮김
생각의 나무 발행·9,800원
칼 마르크스는 1883년 3월14일 사망했다. 그런데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이 책은 그가 지금도 이 세상에 살고 있고, 일기를 썼으며, 그 일기가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마르크스는 살아있을까.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위대한 사상가인 그는 영생의 능력을 얻었지만, 신은 그를 영생의 천국에서 받아주지 않고 죽지 않는 인간으로 만들에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게 했다. 1885년 12월8일,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망일로부터 1,000일째가 되던 날 죽지 않는 인간의 몸으로 로마의 스페인 계단을 내려와 이탈리아 땅을 밟는다.
그는 정체불명의 사람이다. 자신을 증명할 아무런 수단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어떻게든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집 없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로서 살며 오로지 노동력만을 팔아 하루하루를 살 수 밖에 없다. 그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다. 노숙자 신세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빈에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가 로마여행 중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한 걸인이 떨어뜨린 낡은 노트를 줍는다. 그것이 마르크스가 쓴 일기다. 편집자는 이를 유명한 잡지사에 넘겨 검토를 부탁한다. 잡지사 수석기자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넘어갔지만, 차츰 관심을 보이게 되고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때부터 이 노트를 강탈하려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그를 압박한다.
이에 수석기자는 노트를 친구에게 보여주고 보관하게 한다. 사회복지사였던 친구는 일기에 완전히 빠져 부랑자들 속에서 일기에 나온 불멸의 인간들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수석기자는 빈의 편집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직접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다 공항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죽는다. 일기는 진짜 마르크스가 쓴 것일까. 두 사람은 누가, 왜 죽였을까.
저자 이름 역시 칼 마르크스다.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으며, 1990년부터 7년간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마르크스를 등장시켜 추리소설식으로 쓴 것이 이 책이다. 일기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진행되면서 일기 내용은 10부분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저자는 자신의 시각으로 본 마르크스를 말하는 한편 마르크스의 일기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가한다.
저자가 파악한 마르크스는 고상한 이상과 도덕적 윤리를 강조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추악하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속물이었다. 말뿐인 공산주의자였고, 그의 주장은 탁상공론에 그쳤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다. 한 예로 록펠러에 대해 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내가 항상 경고한 그런 자본주의자였다. 세계는 미국의 반 트러스트법을 나 아닌 그의 공로로 돌린다. 왜냐하면 그가 나의 예언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록펠러와 마르크스, 우리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난해 출판된 애덤 스미스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나타나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의 소설 ‘애덤 스미스 구하기’와 비슷하다. 스미스는 진정으로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강조하고 싶어 다시 세상에 왔다. 마르크스가 현 세상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것도 노숙자 신분으로, 무더운 여름철, 흥미진진한 추리소설로 마르크스를 만나는 것도 좋은 피서일 것이다. 매끄러운 번역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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