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26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남편 데니스 대처가 런던의 리스터 병원에서 작고했다. 향년 88세. 아내 마거릿과 마크, 캐럴 두 자식이 그의 마지막 숨결을 지켜보았다. 총리 재임 당시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은 "데니스가 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열한 해가 넘게 이어진 총리직을 결코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남편을 기렸다. 마거릿 대처의 정치적 둥지라 할 보수당 중앙당사에도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 반기(半旗)로 내걸렸다.데니스 대처는 그 자신 탐스러운 군인 경력을 거쳐 성공적인 사업가로 일생을 살았지만, 그의 공적 명성은 주로 마거릿과의 결혼 덕분에 생겨난 것이었다. 아내 쪽이 영국 최고 권력자였던 11년을 포함한 50여년의 결혼 생활 동안, 이 부부는 보수당 지지자들의 마음에 쏙 들 만한, 모범적으로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두 사람 가운데 그런 화목을 이루는 데 더 크게 이바지한 쪽은 강한 성격의 권력자 아내를 질시하거나 경원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 권력에 편승하지도 않은 데니스일 터이다. '퍼스트 젠틀맨'이라는 말을 영어의 일상 어휘로 만든 11년 동안 데니스의 삶을 이끈 것은 '늘 아내 곁에 있되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always present, never there)는 모토였다. 그는 그런 모토에 이끌리는 자신을 '그림자 남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지혜로운 처신 덕에 데니스는 보수당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영국인 일반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마거릿 대처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 없이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돼 성공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매우 드문 여성 정치인이다. 한국에도 언젠가 그런 여성 최고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여성 정치인의 '그림자 남편'으로서 시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한국의 '퍼스트 젠틀맨'을 보고 싶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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