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해삼의 눈/쓰루미 요시유키 지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해삼의 눈/쓰루미 요시유키 지음

입력
2004.06.26 00:00
0 0

해삼의 눈쓰루미 요시유키 지음ㆍ이경덕 옮김

뿌리와이파리 발행·3만3,000원

서양이 태평양 탐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 등 서양 선원들은 이 지역 섬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물자교환을 시작하는데, 예컨대 섬 사람들에게 붉은 깃털을 주고 식량을 얻고 돼지를 주고 자생 백단향을 잘라갔다. 백단향은 향이 강한데다 향유까지 얻을 수 있어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서양의 선원들은 백단향을 벌목, 중국에 팔았는데 그러다 피지에서는 백단향이 사라졌다.

백단향의 역할을 이어받은 것이 해삼이었다. 해삼이 교역의 주요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피지에서는 1810년 건해삼 가공이 시작된다. 건해삼 가공은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가공에 10~30일이 걸렸다. 그 기간 유럽, 미국 등에서 온 선원들은 피지에 머물렀다. 주민들은 해삼 산지로 몰려들었다. 건해삼 생산을 독촉하는 선원들은 섬 주민을 움직이고 그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선원들은 대포 화약 아연 고래이빨 등을 주고 해삼 외에 특산물도 가져갔다.

. 해삼은 사람을 붙잡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노예로 파는 행위, 즉 블랙버딩(blackbirding)이라는 단어와도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오스트레일리아 면화재배업자는 전쟁 특수를 누렸고, 이들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남태평양 섬 사람들을 유괴했다. 처음에는 농업 노동력 확보를 위해 매매가 시작됐는데, 붙잡힌 사람들은 곧바로 인근 해협 해삼 채취 노동력으로 투입됐다. 우리가 한낱 음식으로만 대하는 해삼에는 이처럼 사람들의 삶과 교역의 역사가 스며있다.

일본 류코쿠(龍谷)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 쓰루미 요시유키(鶴見良行)가 쓴 ‘해삼의 눈’은 해삼의 채취, 가공, 조리를 매개로 한 태평양 연안 문화, 교역 보고서이다.

해삼은 사실 평생 15m 밖에 움직이지 않는, 매우 게으른 해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태평양 연해주에서부터 남태평양까지 서식 지역이 매우 넓다. 저자는 중국, 한반도,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해삼 서식지를 따라가며 무려 20년이나 해삼을 살폈다.

저자에 따르면 해삼은 채취보다 가공에 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피지의 사례처럼, 교역자는 해삼 가공을 위해 오랫동안 섬에 머물렀는데, 그 과정에서 주민과 문화교류가 일어났다. 가공은 주로 남태평양에서 이뤄졌지만 주요 소비처는 중국과 홍콩 등지였다. 가공 해삼을 따라 언어 식습관 화폐 인적자원이 오갔다.

책은 해삼 식용이 구석기 함경도에서 시작됐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함경도 해안 퉁구스계 해민(海民)이 해삼을 채취, 소금에 절여 구황 식품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해삼에 등장하는 삼 역시 우리나라의 산삼을 의미하기 때문에 해삼은 한반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책 제목과 달리 해삼에는 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삼의 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저자는 해삼의 눈을 통해 문명교류의 역사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