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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옛집 '폐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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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옛집 '폐허로'

입력
200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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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고택은 붕괴, 박인환 가옥은 엉뚱한 곳으로 판명….'서울시가 추진중인 근대 역사·문화인물의 생가 보존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멸실 방지를 위해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던 김수영 시인의 옛집이 지난 3월 폭설로 무너져 내렸고, 시 지정문화재로 검토됐던 시인 박인환, 교육가 현상윤의 가옥도 정밀조사 결과 이들과 무관한 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화가 이상범, 시인 한용운 등의 고택에 대한 시 지정문화재 지정 여부도 지난 16일 열렸던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 보류됐다.

김수영 고택 폭설로 '폭삭'

치열한 저항정신으로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한국 현대시의 거장 김수영(1921∼1968)의 고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지난 3월7일. 종로구 종로6가 43의 4에 위치한 이 낡은 기와집은 3월 4일과 5일에 걸쳐 쏟아진 폭설로 기둥이 부러지면서 반파, 7일 소유주 이모씨에 의해 완전 철거됐다. 당시 소유주가 이 집을 창고로만 사용하고 실제 거주하지는 않아 인명피해는 없었다.

건평 72.73㎡(약 22평)의 이 단층 개량한옥은 김수영이 시인의 꿈을 키우며 살던 곳.

그가 거주했던 3곳의 집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있던 곳이다. 김수영은 태어난 이듬해 관철동에서 이곳으로 집을 옮겨왔는데, 바로 뒤쪽 집에 청상과부가 된 그의 고모가 살았다.

김수영은 가세가 기울어 그의 부모들이 이곳 저곳으로 이사를 다닐 때에도 친자식처럼 아껴주는 고모의 집에서 시를 쓰며 성장했고, 일본 유학을 마쳤을 때와 광복 직후 만주에서 돌아왔을 때도 이 집에 거처를 마련했었다. '거대한 뿌리', '망건' 등을 발표했던 산실이 이곳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가 소설가 현진건, 시인 박목월 생가의 잇단 철거에 자극받아 이곳을 포함 총 13곳(표)을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한 게 불과 한 달 전인 2월. 하지만 시는 멸실방지를 위해 문화재 신청을 해놓고도 정작 관리는 소홀히 해 붕괴를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붕괴사실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소유주의 의사에 따라 개축하거나 내부수리를 할 수 있는 데다 강제적 보존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조치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시가 신청한 13곳의 근·현대 예술인 생가 중 이미 철거된 박목월 생가와 김수영 고택을 비롯해 언론인 김성수, 독립운동가 김상옥 생가를 제외한 총 9곳만 지난달 20일 등록문화재로 예고했다.

문화재 선정기준 다시 마련

교육가 겸 소설가 현상윤, 시인 한용운·박인환, 동양화가 이상범, 미술평론가 최순우, 조각가 권진규 등 총 6명의 가옥을 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2월부터 시작된 정밀조사 결과 현상윤 생가는 종로구 가회동 1의 192이 아니라 이미 빌라가 들어선 그 뒷집이었고, 원서동 134의 8로 추정된 박인환 가옥은 70년대 멸실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이 둘을 제외한 4곳의 가옥을 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문화재위원회가 16일 열렸으나,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의 선정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라는 문화재위원들의 의견이 많아 결정이 보류됐다.

한국영 시 문화재과장은 "시 지정문화재와 그보다 중요성이 떨어지는 등록문화재 간에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아 대상선정을 다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옥 보존 상태가 뛰어난 음악가 홍난파 고택은 등록문화재에서 시 지정문화재로 '영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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