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이 이달 초 고 김선일씨의 피랍 직후 심문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입수, 우리 정부에 피납 여부를 문의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피살된 김씨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 유무가 논란 거리로 등장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24일 "김씨 유족들이 원할 경우 국가 배상소송 변호인단을 구성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소송으로까지 갈 지 주목된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국가의 구체적인 잘못을 입증하기 어려워 배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원론적으로 국가가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지만 무장단체가 저지른 테러행위에 대해서까지 국가의 배상 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소송을 낼 경우 원고는 김씨 피살과 국가의 과실에 대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파병키로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는 4월 "이라크 파병은 통치행위의 일종으로 위헌성 여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사건 은폐·왜곡, 안일한 대처 등 구체적인 잘못이 드러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가 피랍 제보를 받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의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불법행위'(헌법 2조 및 국가배상법 2조)의 입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무장단체로부터 '24 시간'이라는 시한을 통보 받은 뒤 곧바로 '파병방침 불변'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나 3주 동안이나 피랍 사실을 모르는 등 정부의 정보부재와 안이한 대처 등도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김갑배 이사는 "파병 방침 재확인이 김씨에게 나쁜 결과를 미칠 것임이 명백했던 만큼 굳이 그 시기에 발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며, 이전에도 교민이 무장단체에 피랍됐던 만큼 정부가 대사관 등을 통해 수시로 교민 안전을 점검했어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 한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의 불법 행위와 상관 없이 유족들에 대한 위로금 차원의 '보상'은 가능하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 사건에서도 국가와 미군측은 유족들에게 보상금 지급을 제안했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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