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씨의 피랍 전후를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가 피랍된 시점이 당초 정부가 발표했던 17일이 아니라 그 훨씬 전인 지난달 31일이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이어 AP텔레비전이 이달 초 피랍 직후 김씨를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고 김씨의 피랍여부를 우리 외교부에 문의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사실이라면 김씨 피랍사건의 성격과 정부의 거짓말 여부 및 그 의도 등으로 알려진 사건의 전말이 통째로 흔들리는 중대사이다. 의도나 고의가 없이 외교당국의 무사안일이나 무능, 허술하거나 미숙한 대응의 결과라 해도 치명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무고한 청년이 목숨을 무참하게 잃고, 온 나라가 뒤흔들린 이 사건에서 정부의 대응과정 어느 한 구석에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결코 용납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만 한다.
김씨가 일하던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은 사건이 알려질 때까지 10여일 넘게 납치단체를 상대로 변호사 등을 동원해 독자적인 석방협상을 벌여왔다고 한다. 또 그는 이 달 들어 네차례나 대사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피랍 시점을 비롯,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을 수시로 바꾸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언행은 한둘이 아니다.
AP측은 지난 3일 한국지사의 기자가 외교부 관리에게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는 알리지 않은 채 김씨의 실종 여부를 물었다고 밝혔으나, 외교부는 아직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자체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이 의혹은 자체조사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 같다. AP측도 사실규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 때라도 피랍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수 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알고서도 파병결정에 장애가 올까 봐 고의로 은폐했다고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것은 무서운 음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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