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에게 자기 나라가 주재국에 널리 알려지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주재했던 라우리 코르피넨 전 핀란드 대사는 행복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달 초 말레이시아 대사로 이임했다.그가 한국에서 근무한 4년 동안 한국에서의 핀란드 인지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TV 광고에서 녹색 모자를 쓴 핀란드 할아버지가 핀란드어로 "휘바, 휘바!(잘했어요, 잘했어요!)"하고 나올 정도가 됐다.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조원장 다니스코 코리아 사장과의 인연이 숨겨져 있다.
코르피넨 대사는 2000년 9월 한국 부임 직후 조 사장을 만났다. 당시 조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쿨토 코리아(현 다니스코 코리아) 본사가 핀란드에 있어 이루어진 첫 만남은 의례적이었다. 코르피넨 대사에게 조 사장은 영어가 유창하고 세련된 매너를 갖춘 비즈니스맨 정도로 기억됐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것은 이듬해 초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였다. 코르피넨 대사는 휴가차 고국에 들르는 길이었고 조 사장은 한국의 치과의사들과 함께 핀란드 정부의 충치예방 사업을 견학하는 일을 안내하는 중이었다.
"뜻밖에 만난 것도 반가웠지만 조 사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방문단을 안내하고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후 코르피넨 대사는 조 사장의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쿨토 본사는 2001년 덴마크 다니스코사와 합병해 기능성 감미료, 향료, 유산균 등을 생산하는 북유럽 최대의 식품소재회사가 됐다. 특히 껌에 사용되는 원료인 자일리톨은 세계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여러 회사들이 자일리톨껌을 내놓고 있지만 자일리톨에 대한 국내 홍보와 원료 공급은 다니스코 코리아가 맡고 있다.
자일리톨은 충치예방 효과를 가진 물질. 문제는 자일리톨 광고에 의학적 효능을 설명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 사장은 '자일리톨은 핀란드가 원산지이고, 핀란드 사람들은 자일리톨을 씹기 때문에 충치 걱정이 없다'는 간접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치과 의사들과 핀란드에 자주 다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코르피넨 대사는 조 사장의 열정에 반해 적극적인 후원자로 바뀌었다. 우선 서울 광화문 핀란드대사관 대기실에 '핀란드 대사관' 문구와 핀란드 국기가 새겨진 자일리톨껌 제품을 비치해 방문객들에게 나눠주었다. 비즈니스를 우선시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대사관이 나서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드물었다. 핀란드 대사관을 찾는 사람들은 '자일리톨=핀란드'를 연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코르피넨 대사는 각종 행사에 조 사장을 동반했다. 2002년 타르자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이 방한해 환영만찬을 가졌을 때 코르피넨 대사는 조 사장을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게 하고 내빈들에게 "핀란드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이 여기 있다"고 소개했다. 코르피넨 대사의 이러한 배려가 조 사장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90%가 '핀란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으로 자일리톨껌을 꼽았다.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동일한 질문에 대해 '노키아'라고 답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핀란드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이처럼 코르피넨 대사와 조 사장의 인연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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