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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6·25 기념 '평화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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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6·25 기념 '평화의 계곡'

입력
200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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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지방으로 미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인 몬태나주의 미줄라라는 소도시 한가운데 태평양전쟁, 베트남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이 지역 출신 군인을 추모하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조금 교외로 나가면 한국전쟁기념관이 있다.건물은 판잣집 비슷하지만 관리인도 있는 이 소박한 기념관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기증한 당시의 병영 생활 용품 및 기타 한국전 관련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역사가 짧다지만 결코 역사를 소홀히 하는 나라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는 전쟁을 기억하고 전사자를 추모하는 데 가장 소홀한 나라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무시하고 인명을 경시하고 미래를 방기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6·25는 우리 현대사의 중추적인 사건이다. 조선왕조 멸망 이후 우리 역사의 모든 물길이 6·25라는 해일을 만들었고, 그 여파가 현대사회의 모든 병리현상의 근저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막연히 부모, 조부모 세대가 무지하게 고생한 시절이라든가, 세계 열강의 충돌이 우연히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든가, 심지어는 남한이 북침했다가 실패한 사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중에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지 모른다'고 한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6·25 당시에 유엔군이 우리를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숨막히는 가난과 압제 속에서 불안에 떨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젊은 세대는 우리를 죽음과 노예상태에서 구해 주기 위해 귀한 피를 흘려 준 16개 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고 있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자기가 방문하는 나라가 6·25 때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준 우방인줄도 모른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리고 소중한 아들들을 보내서 우리를 사지에서 구해 준 나라들이, 우리 국민이 그 사실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것을 알면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지원할 의의를 느끼지 못하지 않겠는가.

경기 남양주시에 20년이나 주거해 온 전 국립국악원장 한명희 교수는 몇 년 간 남양주의 갑산, 적갑산 계곡을 6·25를 기념하는 '평화의 계곡'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서 남양주시의회의 만장일치 합의를 이끌어내었다. 아름답고 애련한 가곡 '비목'의 작사가인 한 교수는 젊은 시절 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6·25의 참혹한 흔적을 매일 목격했고, 그 슬픔에서 우러난 노래가 '비목'이다.

그 가슴 아픈 기억을 간직해 온 한 교수의 구상은, 옛 고려 시대부터 군사훈련지였고 6·25 당시 격전지로서 전쟁과 인연이 깊은 갑산, 적갑산 기슭에 16개 유엔 참전국과 한국, 북한, 그리고 중국까지 6·25에서 피 흘린 모든 나라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추모의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공원 안에는 각 나라마다 한국전쟁 관련 자료보존소 겸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기념관을 하나씩 만들고, 조각공원과 콘서트홀, 연극공연장 등을 설치하여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명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곳을 방문하는 우리 국민은 우리 현대사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민족의 비극을 가슴에 새기며 평화를 희구하게 되고, 우방국 국민들은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우리에게 더 깊은 유대를 느끼게 될 것이다.

6·25 발발 60주년인 2010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이 계획이 아무쪼록 많은 국민의 관심과 성원 속에 성사되어 세계인의 평화의 염원이 꽃피는 안식처, 문화공간이 이룩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서지문 고려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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