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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인어공주'와 '아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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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인어공주'와 '아는 여자'

입력
200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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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극장 성수기가 다가오고 있다. 냉방 잘 된 극장 객석에서 찜통 더위를 잊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대작이 많다. 영상과 음향의 테크노피아에서 두 시간 정도 비명 지르면 그 뿐인 것도 영화의 매력이다.그러나 그보다 차라리 거실에서 수박 한 조각 먹으며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인생의 즐거움을 준다고 믿는 사람에겐 굳이 영화관에서 누리는 인공적인 감정 조작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박흥식의 두 번째 영화 ‘인어공주’는 모르모트처럼 반응하게 만드는 철없는 여름 대작 사이에 배짱 좋게 들어서서 남녀노소 두루 생각하고 감동하게 만드는 성숙한 멜로드라마다.

너무 절찬하는 게 아니냐고? 실은 그렇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본 일련의 형편없는 한국 영화를 대하다 ‘인어공주’를 접하면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무조건 카메라를 돌리고 30초마다 대사에 개그를 집어넣으면 재미있는 영화인 줄 착각하는 일부 철없는 한국영화의 관성에 치료제가 될 만하다. 모든 화면이 신중하고도 힘 있게 전개되며 연출자가 깔아놓은 그 멍석 위에서 전도연, 박해일, 고두심이 제대로 연기를 보여준다.

‘인어공주’에서는 나영(전도연)이 과거로 들어가 어머니 연순의 젊을 적 모습과 대면하는 가운데 이 두 사람을 전도연 혼자 1인 2역 하는 젊은 시절 회상 장면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 흔한 과거 회고조 영화와 비슷한 소재를 취한 듯 하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감독의 꼼꼼한 손 맛을 따라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화하고 젊은 시절의 판타지 장면과 구질구질하고 악다구니로 치닫는 현재의 삶을 이어 붙여 굳센 삶의 긍정에 도달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어머니 연순을 연기하는 고두심의 존재감은 울컥하는 관객의 심정을 자아낼 만큼 동시대의 어떤 삶의 표정을 자연스레 건져 올린다. 천방지축 노는 젊을 적 연순 역의 전도연도 모든 이가 금방 감염될 청춘의 활기를 전해준다.

발전한 재능을 증명하는 장진의 ‘아는 여자’도 만족할 만한 대중 영화의 꼴을 취하고 있다. 괴이할 만큼 독특한 코미디를 선보여온 장진의 작품 이력에서 ‘아는 영화’는 특이하게도 연애 영화다. 남녀간의 야무지지 못한 연애와 순정을 담은 이 영화는 은근 슬쩍 코미디로 넘어가는데 그게 밉지 않다. 도리어 익숙한 연애 영화의 상투형을 비틀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영리함에 미소를 짓게 한다.

이전 영화에서 장진은 떼로 등장한 배우들의 해프닝에서 활기와 웃음을 끌어냈다. 하지만 ‘아는 여자’에서는 주인공 묘사에 집중하고,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연애의 낭만적 신화를 부분적으로 조롱하면서 결국은 그걸 또 믿게 만든다. 그게 가능한 것은 예기치 못한 듯 하면서도, 능숙한 조화를 이루는 재담 덕분이다. 남녀 주인공의 매력과 연약함을 동시에 껴안고 그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설득하는 것 만큼 로맨틱 코미디에서 믿음직스러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남녀 주인공 역을 연기하는 정재영과 이나영은 정이 가는 흡입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특히 거친 사내 역으로 자기 존재를 알렸던 정재영의 또 다른 면모는 굉장한 볼거리다. 유능한 배우가 해내는 이런 감정의 스펙터클을 통해 결국 좋은 영화와 형편없는 영화를 가르는 기준의 하나는 알맹이가 있는 연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어공주’와 ‘아는 여자’ 모두 제대로 해낸 연기의 장인정신을 담고 있다.

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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