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진열된 납작한 모양의 대나무 술잔, 그리고 대나무통 술병, 둥그런 도자기잔부터 길다랗거나 혹은 평평한 유리잔까지…. 투명한 진열장 통유리 너머 놓인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술잔들이 시선을 잡아 당긴다. 바로 술 맛보다 더 좋을 것만 같은 ‘술잔의 유혹’ 사케바가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사케(酒)는 정종, 혹은 청주를 가리키는 일본식 단어. 쌀로 빚은 술로서 알코올 도수 15~17도의 은은한 술 맛을 자랑한다.
굳이 술 종류만 다르다고 사케바일까? 사케바는 말 그대로 사케를 주제로 한 바, 즉 술집이다. 양주바의 진열대에 와인이 늘어서 있고 와인바의 와인셀러에 와인병이 가득 차 있듯 사케바 벽면에는 갖가지 사케병들로 장식돼 있다. 자연 색상의 소재가 사용된 바와 테이블, 의자, 고풍스런 분위기 등 겉모습 만으로도 일본의 어떤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무덥다가도 이내 장대비가 내리며 끈적끈적한 날씨가 반복되는 이 여름 사케바에서 술 맛을 음미해 보면 어떨까! 위스키 가득찬 양주바나, 테이블에 큼지막한 와인잔이 널린 와인바, 아니면 동동주 가득한 민속주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르고 신선한 기분이 들 것만 같다.
천가지 술잔의 맛, 사케
서울 청담동의 사케바 ‘미즈센’에서는 술잔들이 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담겨 나온다. 바구니에 담긴 술잔만 20여 가지. 손님들이 술 종류와 브랜드, 취향에 따라 잔을 골라 마시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케바에는 다양한 사케 종류 만큼 각양각색의 술잔이 갖춰져있다. 그저 기호대로 술잔을 고른다기 보다 술의 특성과 맛, 향에 맞는 술잔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온갖 종류의 술잔을 고르고, 마시는 것은 물론, 그 많은 술잔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라다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경지에 다가서는 듯 하다.
청담동의 사케바 ‘에비수’는 술 종류에 따라 술잔 세팅을 달리 한다. 마쓰자케를 시키면 향나무 잔에, 조센을 주문하면 대나무 술잔과 대나무통병에 술이 담겨 나온다. 술잔 종류만 50여가지. 술이 떨어졌다고 사용하지 않는 술잔만도 여러 종류가 된다. 하얏트호텔의 ‘사케바109’도 입구에 진열된 사케병들만으로로 일본 사케의 다양한 맛을 눈으로 맛보게 한다.
사케도 와인처럼
일본에서 생산되는 사케는 그 종류만도 1,000가지를 넘는다. 각 지방별로 소규모로 생산하는 사케들이 워낙 다양해서다. 차게 마시는 사케,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사케가 있고 쌀의 도정률에 따라서도 사케 종류가 구분된다. 그래서 일본 유명 사케바에는 와인 소믈리에처럼 사케 소믈리에가 있다. 손님들에게 다양한 사케의 맛을 설명해 주고 적당한 주종과 술잔을 맞춰주기 위해서다.
국내 사케바도 보통 50여가지 이상의 사케를 구비하고 있다. 에비수의 주인 조환준씨는 “손님의 기호와 성향을 알아내 적절한 주종을 추천하고 설명해 준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마셔보고 테스트한 사케만 가져오는 것으로 자부심을 갖는다.
사케바의 요리솜씨
사케바는 흔히 소오사구(창작ㆍ創作) 요리점이라 불린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 선보일 만큼 음식 수준이 높고 깊어서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기 전 유행했던 것은 가이세키(정식) 요리점. 최고의 음식들만을 모은 정식집인데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대부분 문을 닫고 이들 식당의 조리사들이 차린 것이 소오사구 요리점이다. 가이세키 수준의 음식을 저렴하고 간단하게 판다는 것이 소오사구의 특징.
사케바에서는 원하는 음식을 필요한 만큼 시켜 먹는다. 일식당처럼 곁반찬이 풍부하게 나오는 대신 비싼 가격을 내는 것과는 차별화 돼 있다. 생선회나 샐러드를 비롯, 꼬치구이, 화로직화구이, 생선구이, 초밥, 냄비요리 등 요리 종류별로 다양한 메뉴가 갖춰져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가볼만한 사케바
사케바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일본 정통 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구이나 튀김, 회 등 각종 메뉴를 일품요리로 주문해 양껏 먹는 것이 요령. 요리별로 양과 가격이 제각각이어서 인원과 양을 감안해 주문하면 부담없이 식사나 안주를 즐길 수 있다. 보통 샐러드는 5,000원, 생선회는 접시당 1만5,000원, 꼬치는 종류별로 3,000원, 생선구이는 4,000원, 냄비는 1만5,000원부터.
●미즈센 (02)3446-7322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명품관 건너편 골목
청담동의 정통 일본요리집 아오야마(靑山)의 조리실장인 박범순씨가 운영하는 사케바. 일본 정통 요리들을 다양한 일품요리로 선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은 사케바, 왼쪽은 야키도리 등 각종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섹션이다.
30대부터 40~50대 중년층까지 부담없이 찾을만한 공간으로 적당하다. 각종 비즈니스 모임이나 접대용 자리로 손색없으면서도 가격은 일식당에 비해 부담없다.
●에비수 (02)3444-3123 서울 청담동 디자이너센터 건너편 골목
일본 사케바 에비수의 한국지점. 일본에서 5년간 일식을 공부한 주인 조환준씨가 사케 소믈리에로 일하며 직접 일식 요리들도 만들어 낸다. 납작한 모양의 나무 잔이 최고 인기 술잔. 먹기는 불편해도 향이 물씬 풍겨 애주가들이 특히 사랑한다. 술잔을 넘길 때 공기가 입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최고 품격의 술잔은 단 2잔만 남아 있다고. 직접 만든 데리야키 소스의 소고기, 닭고기, 구운 가지와 소고기양념을 곁들인 가지민찌요리, 담백한 야채떡볶음인 모찌이따메 등이 인기 메뉴.
●사케바109 (02)799-8164 그랜드하얏트서울 일식당 아카사카 내부
정통 일본 음식과 함께 사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호텔 사케바. 사케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데, 수입산 뿐 아니라 호텔 자체에서 엄선해 직수입하는 일본의 명주도 10여가지나 된다. 쌀을 많이 깎아 오래 숙성시킨 술로 쓴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명주 다이긴조(國權)를 비롯, 가오리노 준마이, 호린 준마이 다이긴조 등은 여성에게 인기높다.
●이키이키 (02)3783-0002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지하
일본 정통 주방을 재현한 오픈 키친 인테리어가 특징. 특급호텔 출신의 주방장이 선보이는 다양한 일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사케바 외에 스시바, 야끼도리바 공간도 별도로 있어 일본인 조리장이 요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입구에 일본 정원을 재현한 평상이 있는데 물이 흐르는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참 숯으로 구워내는 꼬치구이(야끼도리)와 생선초밥, 조림요리 등 메뉴도 다양하다
/박원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