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살려 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나가 달라고 애원하던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도했던가. 지도에도 없는 먼 여행길을 그렇게 가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는 간 게 아니라 보낸 거였다. 누가 그를 그렇게 끔찍하고 비참하게 보냈는가? 누가 그를 그렇게 춥고 억울한 영혼으로 떠돌게 했는가?그를 죽인 직접적 존재는 테러리스트들! 그런데 이상하다. 왜 테러는 반인륜적 범죄라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무조건 따라가게 되지 않는지. 저쪽에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미국을 돕는 파병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는데, 파병방침은 철회할 수 없다고 거듭 천명해 놓고 김선일씨를 구하겠다고 했으니...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어요." 그 절절한 생에의 의지가 유언이 된 그는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었다. 우리 중의 누가, 또 언제 그렇게 소름끼치게, 그렇게 황망하게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은 이슬람권의 결사항전으로 이어지고, 한번도 이라크의 혼란을 바란 적이 없을 뿐더러 이라크의 평화조차 관심이 없었던 우리까지 파병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우리까지 이라크 저항단체들의 표적이 되고 그 결과 김선일씨가 그렇게 떠나니 이 무슨 아수라장인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을 것인가.
지난 역사에서 '침략전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엄청난 고난을 겪은 우리가 침략전쟁으로 평가되는 전쟁에 미국편을 들어 전투병력을 보내는 현실이 아프다. 굽신거리는 외교는 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전투병력을 보내면서 '평화재건'이 목적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헛소리가 아프다. 이라크는 원하지 않는데 이라크의 복구와 재건을 돕기 위한 거라고 못을 박는 소리에 누가 귀를 기울일까. 이슬람권은 넓고 우리는 위험하다. 파병의 결정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한번도 걱정하지 않았던 테러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 됐는데 도대체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국익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반도의 아들이 무참히 살해되었음을 안 그 날에도 "평화재건을 할 것"이라며 파병의 의지를 다질 때에는 왜 그렇게 무섭게까지 느껴졌는지. 그것은 동맹이나 친구의 태도가 아니라 충직한 노예의 태도였으므로. 적어도 동맹이나 친구라면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수 있는 관계다. 파병을 한 스페인이 철군하고, 전쟁 당사자인 영국조차 이스탄불 영국대사관에 폭탄테러가 터지자 추가파병을 지연하고 있는데, 전쟁의 당사국도 아닌 우리는 왜 그렇게 파병에 집착하는지.
"테러는 반인류적 범죄입니다. 테러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코 테러를 통해서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문을 들으면서 아, 이제 테러 앞에서 안전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김선일씨가 나오겠구나, 김선일씨가 또 나와도 국가는 여전히 손 놓고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먼저 왔다. 한 인터넷 만평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내 부모, 친구들과 떨어진 이역만리, 날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날 살릴 수 있는 곳도 하나, 그러나 조국은 날 버렸다"라고.
나는 "반미면 어때"라고 했던 '노무현'이 그립다. 그 말은 반미를 부추긴 말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였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노무현'을 배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김선일씨의 비극은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이다. 파병을 연기하고 마침내 철회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비극이다. 파병 철회만이 마침내 한반도까지 미칠 아수라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주향 수원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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