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은 딱 50일. 지금 태릉선수촌은'더 빠르게(Faster) 더 높이(Higher) 더 힘차게(Stronger)'를 온몸으로 외치며 2004아테네올림픽(8.13∼29)을 준비하는 태극 전사들이 흘린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구현하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태극전사들은 역대 최다인 9개 종목에서 13개의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의 금메달 가상 시나리오를 엮어봤다. /편집자주
올림픽 성화가 타오른 다음날인 8월 14일 오전11시40분(현지시각) 마르코풀로사격센터에 금빛 총성이 울렸다. '돌아온 총잡이' 조은영이 마지막 한방으로 한국에 첫 금메달 소식을 알린 것. 여자 10m공기소총 본선에서 400점 만점을 쏘며 서선화와 함께 결선에 오른 조은영은 103.5점을 더하며 우승했다. 교통사고와 부상을 딛고 이룬 인간 승리의 결실이었다. 서선화는 아깝게 은메달.
사격에서 의외의 첫 금메달을 딴 한국은 이틀 뒤(16일) 이번엔 '고교생 총잡이' 천민호가 남자 10m공기소총에서 다시 600점 만점 신화를 재현하며 세계1위 공시 요세프(슬로바키아)를 3.1점차로 누르고 사격에서 '고교생 금맥'을 이어갔다. 당돌한 10대 천민호는 "예상했던 일"이라고 말해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같은 날 헬레니코종합경기장에선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 참가한 최병철이 금메달을 찔렀다. 유럽의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최병철은 프랑스검객 구야드를 상대로 14―14 동점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다 10초를 남겨두고 비기(秘技)인 쿠페(어깨넘어찌르기)에 이은 데가제(옆구리찌르기)로 김영호에 이어 국내 펜싱 사상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유도 '한판승의 달인' 이원희(73㎏)는 지미 페드로(미국)와의 결승에서 3분이 지나자마자 전광석화 같은 허벅다리걸기 기술로 한판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15일 여자 유도 이은희(52㎏급)의 깜짝 금메달에 이은 두 번째 유도금메달로 한국선수단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18∼21일은 '한궁(韓弓)의 날'이었다. 윤미진은 개인전과 단체전(박성현 이성진)을 휩쓸며 시드니에 이어 올림픽 2관왕 2연패의 대업을 이뤘고, 남자양궁(장용호 박경모 임동현)도 단체전 2연패를 달성했다. 양궁에서만 금3 은2 동2.
19일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에선 김동문―나경민조가 중국의 장준―가오링조를 누르며 시드니의 어이없는 패배를 설욕했다. 올림픽 3수의 한을 푼 나경민은 코트에 꿇어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사격과 여자유도에 이어 21일엔 갈라치홀(탁구)과 니카이아실내체육관(역도)에서 의외의 낭보가 날아왔다. 4강에서 홍콩의 강호 리칭―고라이첵을 어렵게 꺾은 탁구 남자복식 이철승―유승민조가 결승에서 맞붙은 숙적 왕하오―궁링후이조에게 역전승을 거둔 것.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은 인상에서 127.5㎏을 든 데 이어 용상에선 175㎏을 들어 세계기록(302.5㎏) 보유자인 탕공홍(중국)을 간발의 차로 누르고 첫 여자 역도 금메달을 따냈다.
23일엔 체조 도마에 출전한 조성민이 체조 첫 금메달을 조국에 안겼다. 조성민은 만점 기술인 '여2'와 '로페즈'를 완벽에 가까운 착지로 소화하며 중국의 리샤오펑을 0.02점차로 물리치고 시드니 은메달리스트 이주형 코치의 한을 풀어줬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투기종목이 효자노릇을 했다. 27일부터 시작된 태권도에선 장지원 황경선 문대성이 차례로 황금 발차기를 선보였다. 레슬링은 25일 그레코로만형 김인섭(66㎏급)에 이어 28일 자유형의 문의제(84㎏급)가 금메달을 메쳤다. 부상을 알리지 않고 전 경기에 참가한 문의제는 결승에서 러시아의 강자 사지드를 맞아 1―1로 비겼지만 연장에서 부상투혼을 발휘해 클린치(싸잡기) 기술로 사지드를 휘돌려 4년 만에 금빛 한을 풀었다.
올림픽 성화가 꺼질 무렵(29일) 한국에 마지막 금메달 소식을 알린 주인공은 '봉달이' 이봉주였다. 섭씨 35도의 무더위와 끝나지 않는 오르막길에서 펼쳐진 마라톤 '죽음의 코스'에서 이봉주는 세계기록(2시간4분55초) 보유자 폴 터갓(케냐) 등과 1위 그룹을 형성하다 29㎞지점에서 치고 나와 제일 먼저 마라톤의 전설이 깃든 파나티나이코경기장에 도착, 60억 인류에게 승전보를 전했다.
이로써 한국은 목표를 훨씬 초과, 금메달 18개로 세계5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글=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손용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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