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순(남경주). 일명 ‘아르마니’.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삼류 건달로 최근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심란하다.도자(정원중). 조직 중간 보스. 희순의 옷을 못 쓰게 만드는 등 후배 괴롭히는 재미에 살지만 뼈아픈 과거가 있다.
삼류 건달의 배신극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궁금증을 많이 낳는 연극이다. 제목은 무슨 뜻일까. 싸구려 중국제 얘기인가. 게다가 뮤지컬 배우 남경주(42)와 극단 목화 출신의 저력있는 배우 정원중(45)이 손을 잡다니. 욕의 향연이라 할 지극히 남성적인 대본을 각색하고 연출하는 이는 여성 연출가 이지나(41) 아닌가. 2002년 겨울 공연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25일부터 7월25일까지 대학로 라이브 극장에서 공연한다.
연습실인 성균관대 앞의 허름한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뮤지컬 배우 임춘길(35)이 가세해 배우 세 명이 아수라장을 만들며 배신이 판을 치는 밑바닥 인생을 끌고 나갔다. 1막 연습이 끝나자 정원중은 한숨부터 내쉰다. “2막을 어떻게 하냐. 누구 죽이려고.” 대사의 양이 엄청나게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도자가 몫이 특히 많다. 남경주는 착해 보이는 자신의 외모가 걱정스러운지 스태프에게 연신 묻는다. “나 착한 것 좀 없어졌냐? 야비해졌으면 좋겠는데.”
체중이 많이 나가는 정원중은 “극이 힘들어서 연기를 하면 10㎏은 쉽게 빠질 것이라는 연출가의 꼬임에 빠졌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정원중은 “이지나가 연출한 연극 ‘아트’에 반했다. 예전에 연출한 작품을 보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라며 이지나를 치켜 세운 뒤 “그간 방송에만 자주 비쳤는데 이제 연극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며 남다른 의지를 내비친다. 남경주도 결의가 이에 못지 않다. “이 작품 하려고 일부러 뮤지컬을 잠시 쉬었다. 희순처럼 살아본 적이 없고 이렇게 입이 걸게 욕해본 적도 없지만 의욕이 난다.”
주인공 두 사람이 결의를 다진 것에서 알 수 있듯 ‘메이드…’는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정원중이 한 마디 거든다. “건달의 형태는 알겠는데 아직 ‘생태’는 모르겠어.”
언뜻 보면 잘 안 어울릴 듯한 두 사람은 서울예술대학 선후배 사이다. 22년 전 ‘보이체크’등 세 작품을 함께 했지만 그간 걸어온 길은 너무 달랐다. 남경주는 뮤지컬로 매진해 정상을 밟았고 정원중은 TV드라마와 영화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작품이 ‘워낙 헤비해서’(정원중) 연습에만 열중하느라 아직 회포도 풀지 못했다. 두 사람에게 이 작품은 하나의 도전으로, 둘 다 이런 무지막지한 악역은 처음이다. 정원중은 “경주가 쉽지 않은 이번 작품을 손댄 게 대견하다”며 후배를 칭찬했다.
2막 연습으로 들어서자 연습장은 더 후끈거렸다. 서로 배신할 수 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 그 와중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호흡이 가빠지는 빠른 극 전개에 배우들은 한 됫박은 족히 될 땀을 바닥에 흘리고 있었다. (02)6248_0430
/이종도기자 ecri@hk.co.kr
●'메이드 인 차이나'
연출가 이지나는 외국 작품의 진가를 잘 아는 눈 밝은 연출가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도 일찌감치 그 진가를 알고 판권계약을 했고 아일랜드의 신진 작가 마크 오로(32)의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도 인터넷에서 발굴, 일찌감치 ‘헐값’에 계약했다. 오로는 베케트 등 세계적 극작가의 산실인 아일랜드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항공편으로 대본을 긴급 공수했으나 너무 속어가 많아 해석하느라 고생했어요. 140쪽이 넘는 두 시간 분량의 대본인데 나는 연극을 아주 빠르게 진행하려고 해요. 건달들의 잡담 속에 줄거리가 숨어 있는데 이를 찾는 것은 관객의 몫입니다.”
건달세계의 생생한 언어가 꿈틀대는 게 작품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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