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북한 화가의 그림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금강산 연주암의 가을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유화였다. 햇살이 투명한 바위계곡 사이로 맑은 물이 쏟아져 흐르고, 그 물은 연주암에 이르러 하늘 빛을 고요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3호 정도 크기의 작은 유화였으나, 그림 솜씨는 세련된 편이었다. '련주암 2002'에 조모라는 사인이 다소곳했다. 딸이 금강산 여행 길에, 아버지를 위해 큰 맘 먹고 사다 준 특별선물이었다. 가격은 액자까지 포함해 2만원. "고맙다. 잘 사왔다"고 인사를 한 후, 인사동에 새 액자 값을 알아 보았다. 액자가 부서질 듯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4만원을 주고 액자를 갈았다.■ 사실 '련주암'을 보며 처음부터 마음이 아팠다. 만만찮은 필력에도 불구하고, 산과 계곡의 질감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물감을 아끼느라 가능한 한 얇게 색칠을 한 탓에, '이발소 그림'처럼 값싸 보이기도 했다. 화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화가는 재료 부족으로 표현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 대부분의 북한 그림들도 얇게 채색되어 있었다. '2만원'이 북에서 어느 정도의 화폐가치를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 북한 화가의 열악한 제작환경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미술계에서 북한 화가와 어린이에게 물감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큰 낭보다. 화랑협회와 미협, 민미협, 전업미술가협회 등과 2개 화구제조회사가 북한 화가와 어린이를 지원하기 위해 한마음이 된 것이다. 오는 9월 말까지 계속되는 이 운동에는 일반인도 성금 1만원이나 물감, 화구 등을 기증할 수 있다. 미술계는 이 운동은 남북작품전으로 연결시킬 예정이다. 북녘 화가는 백두산에서 비무장지대까지, 남녘은 한라산에서 비무장지대까지 풍경을 그린 후 합동전시회를 연다는 것이다.
■ 2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아트페어(KIAF)에서도 이 운동이 이어진다. 이 행사에서 판매되는 작품의 거래가격 1%를 물감 보내기 운동에 기부하는 것이다. 몇 해전 문인단체와 출판사 등이 '북한 동포 겨울내복 10만벌 보내기 운동'을 벌여 4,000여만원어치를 보낸 적이 있다. 남북 동포 간의 마음을 잇는, 소설같이 따사로운 미담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표현이 있다. 미술인들의 선행이 바로 그렇다. 물감 보내기 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어, 정겹고 박진감 넘치는 한반도 풍경이 '두터운 질감'으로 묘사되고 전시되는 것을 보고 싶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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