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미 동맹 협의 과정에서 금년 상반기까지 한미관계를 보면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 균열은 단순히 군사동맹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양국 간 안보·외교에서 비롯된 것이다.미국은 이미 1990년 초 넌 워너 수정안을 통과시켜 해외 동맹국들에게 직접방위의 책임을 돌리면서 미군을 감축 또는 재조정하여 보조적 역할로 전환시키고자 노력했다. 우리는 이러한 군사전략적 변화에 얼마나 대비했는가? 일본은 미 군사전략의 대(大)수정 가능성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96년 미·일 신 안보 공동선언를 이끌어냈다. 일본이 아·태 지역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미·일 안보동맹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현상 유지만을 하려고 했던 데서 균열이 시작됐다.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미 군사동맹은 북한의 재침 또는 우발적 사태를 억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 역할이 지속됨으로써 한국은 안정 속에서 경제 건설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고, 외국자본의 한국 투자도 가능했다. 이러한 안보적 보장이 없었으면 경제 건설이 가능했겠는가?
이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안정화 단계에 올려 놓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시기에 왜 한·미 동맹에 균열을 초래하려고 하는가? 정부 당국에 묻고자 한다.
우리는 2002년 두 여중생의 비극적 죽음을 반성해야 한다. 이 죽음을 정치권과 언론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이기적으로 악용함으로써 양국 국민 간에 좋지 못한 감정의 씨앗을 뿌린 것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한 감정적 상황 속에서 미군의 이전과 감축이 예상 밖으로 빨리 찾아 왔다. 우리 정부가 이 사태에 예민하게 접근해서 오해를 해소하고 돈독한 안보외교를 수행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막았거나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으로 감군 요청이 오더라도 여유 있는 협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휴전선 주변에 고정 배치한 전력은 미국도 두려워 할 수준이다. 더욱이 북이 남조선혁명을 포기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건너서는 안 될 강을 건넜다고 보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6자 회담에 큰 기대를 건다면 비현실적일 것이다.
미국이 주한 미군을 갑작스럽게 감축하려고 하는 것은 과거 50여 년간의 동맹관계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따라서 한미 양측은 지금이라도 이것이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동북아의 세력 균형마저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한·미 동맹을 신 미·일 안보동맹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자주국방은 어느 순간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통일을 달성하고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한 이 때 한·미 동맹을 약화 또는 후퇴시킨다면 우리의 자주국방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오늘날 어떠한 강대국도 단독으로 100% 자주국방을 달성한 나라는 없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지역안보 또는 집단안보체제를 통해 자주국방의 틀을 갖추고 있다. 우리로서는 한·미 동맹 체제를 돈독히 하여 자주국방의 기틀을 이어 가야 한다. 국방과 안보 문제는 어떠한 장밋빛 낙관도 금물이다.
/허만 부산대 명예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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