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평생의 반려자에게.당신과 만난 지가 2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편지를 써보기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나를 내조하랴, 자식들 뒷바라지하랴 고생하는 당신을 보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하나님께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온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만큼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봉급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우린 남의 처마 밑을 전전하며 살아왔지요. 가난이란 게 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가슴을 아프게 하더군요.
10여 년 전 나는 몹쓸 병을 얻어 경찰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습니다. 항암제를 투여받다 보니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흉측한 몰골로 변하더군요. 당신은 "남편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사에게 매달렸지요. 당신은 내 몸의 썩어가는 부위를 소독약으로 정성스럽게 닦아냈지요. 간호사조차 눈을 질끈 감으며 만지던 피고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닦았지요.
당신의 간호 덕분에 나는 다시 출근하게 됐습니다. 자식들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의젓하게 자라 자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희생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당신과 자식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결혼할 무렵 아름답던 당신의 얼굴과 손이 이제는 모진 세월 속에 너무나 거칠어졌습니다. 내가 못난 때문이겠지요. 나는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군요.
얼마 전 출근길에 당신은 내 주머니에 편지를 슬쩍 넣어 주었지요. 봉투를 뜯어보니 "출근하는 당신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혀 있더군요. 대단한 존재도 아닌 나를 이렇게 아껴주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행복의 계단을 하나씩 함께 올라갑시다. 먼 훗날 백발이 됐을 때 "그동안 보람 있게 살았구나"하고 지난 날을 회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새벽기도를 가면서 내 걱정은 접어두기 바랍니다. 앞으로 내 아침은 내가 차려 먹을 생각입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보낼 각오를 해봅니다.
/박영철·서울 관악구 신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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