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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전용관]호러킹은 없고 호러퀸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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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전용관]호러킹은 없고 호러퀸만 있다?

입력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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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호러의 계절이 왔고, 어느새 우리는 ‘호러 퀸’을 기다리게 됐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여고괴담’(1998년) 때부터 생긴 것 같다. 아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였지만 ‘여고괴담’은 전국의 수많은 여고생들을 울렸고(사실 이 영화는 무섭기보다는 슬프다) 하나의 현상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세 명의 여고생은 ‘교복 입은 호러 퀸’이 돼 우리 곁을 떠돌았다.그 해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다음해 ‘스크림’이 개봉하면서 소리지르고 여기저기 날뛰는 여자들의 존재가 여름 극장가의 단골손님이 됐다. 한국 영화에는 이제 갈수록 호러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령’ ‘페이스’ ‘분신사바’ ‘인형사’ ‘쓰리 몬스터’ ‘시실리 2㎞’ ‘귀신이 산다’ ‘알포인트’ 같은 호러물이 연이어 개봉한다. 그래서 올 여름 극장가는 꽤나 무서울 것 같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한국영화의 흥행 장르가 점점 남성 중심적으로 변해가는 와중에 호러 만큼은 여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호러 킹’이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하다). 바꿔 말하면,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여성 장르는 최루성 멜로가 아니라 호러인 셈이다(그래서 최근 A급 여배우들이 호러로 몰리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영화들이 여성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호러가 여성에게 해치는 가장 큰 해악(?)은 그 영화들이 여성을 지나치게 단순히 묘사한다는 점이다. 공포의 향연 속에서 여성은 희생자 아니면 정신병자다. 호러 장르가 여성을 희생자로 택하는 이유는 여성의 죽음이 좀더 스펙터클하기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할리우드 호러가 글래머를 캐스팅하는 것은 지독히 상업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또한 호러는 원혼이나 저주나 한 같은 이유로 여성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존재’로 그린다. ‘장화, 홍련’ ‘4인용 식탁’ ‘령’에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녀들은 치료받아야 하는 존재다. 그러면서 동시에 치료될 수 없는 존재다.

호러 속의 여성을 여성 일반으로 생각할 수는 없지만, 최근 한국 공포영화가 철저히 여성만을 귀신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은 일종의 성차별이며 산업적으로는 ‘장르의 획일화’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녀들은 헛것을 보고 헛것으로 나타나며 헛것에 의해 죽는다.

여기서 남자는 그 영화의 유일한 ‘이성적 존재’이며 가끔씩 억울한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건의 전말을 책임지고 여성의 한을 풀어주며 살아 남는다. 이것은 그 옛날 ‘전설의 고향’부터 흘러내려온 한국 공포영화의 법칙일 뿐일까 아니면 우리의 고정관념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남자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거의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두 편의 호러가 이미 개봉했으며 앞으로도 대여섯 편의 토종 호러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선보인 호러 두 편은, 앞에서 말했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면 호러의 ‘성적 변화’에 대한 희망은 남은 영화에 걸어야 하는 걸까. 올해엔 정말 조금은 다른 호러를 보고 싶은데 말이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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