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또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현지 한국인들의 안전의식 부재와 통제 어려움도 있었지만 정부는 김선일씨가 납치된 이후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현지 한국인들의 안전 불감증에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파병결정이 내려진 18일 이전부터 정부는 현지 공관을 통해 이라크 주재 한국인들의 안전문제를 경고하며 철수를 강력히 권유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권유는 김씨가 소속된 가나무역에는 통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일하는 중소업체들은 이미 정부의 통제권 바깥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7일 이후엔 회사측과 연락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결국 김씨와 가나무역이 정부의 권유를 듣지 않고 현지 잔류를 고집하다 납치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수십명에 불과한 현지 한국인을 보호하면서 납치사실조차 며칠이 지나도록 파악하지 못한 것은 비난을 면키 어렵다.
정부가 피랍사실을 확인한 경위도 석연치 않다. 최영진 외교부 차관은 이날 오전 "알 자지라 방송을 본 뒤 현지에서 보고해 상황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봉길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저녁 "주카타르대사가 방송국의 연락을 받고 직접 찾아가 방송 전에 사실을 확인, 보고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엇갈리는 해명이 계속되면서 정부의 피랍사실 인지시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방송국에 녹화테이프가 전달된 19일과 방송된 20일 사이에 정부가 과연 피랍사실을 확인 못했는지, 방송되기 한참 전에 인지한 뒤 이를 감췄는지 여부에도 눈총이 쏟아진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