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마시는 홍차처럼 그윽한 분위기를 선사하겠다며 지난해 5월 창간, 순정만화 붐을 일으킨 격월간 만화잡지 ‘오후’가 7호(2004년 5ㆍ6월호)를 끝으로 휴간했다.‘오후’는 만화 잡지로는 드물게 탄탄한 고정독자층을 갖고 있었던 데다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휴간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창간 1주년호를 발행하며 “앞으로 열살, 백살까지 독자들과 함께 숨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이번 휴간이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오후’를 발행해온 시공사는 출판사 전체의 사업을 조정하면서 만화잡지 ‘오후’와 ‘비쥬’를 휴간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공사의 한 관계자는 “만화 시장이 크게 위축된데다 거래처 총판까지 부도나는 등 악재가 겹쳐 하는 수 없이 휴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기가 좋아지면 복간하겠다는 것이 출판사의 생각이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른 시일 안에 복간은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오후’는 창간 직후부터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나인’ ‘화이트’등 비슷한 성격의 순정만화 잡지가 시장 위축을 견디지 못해 폐간된 상태에서 창간, 주위의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이를 잘 극복했다. 청소년용이 주를 이루는 기존 순정만화 잡지와 달리 20대 초ㆍ중반을 대상으로 했다.
순정만화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판타지, 일상 이야기를 적절히 혼합함으로써 대학생과 젊은 주부를 중심으로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했다. 유시진, 권교정 등 ‘오후’의 작가들은 팬이 적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만화잡지로는 드물게 1,000여 명의 고정 독자를 두었다.
이에 힘입어 올해 초에는 네티즌 투표에서 가장 좋은 만화잡지로 뽑혔다. 일부 출판사는 비슷한 성격의 잡지 창간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 관계자는 “사실 만화잡지는 잡지만으로는 이익을 내기 어려우며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어 수익을 보전한다”며 “ ‘오후’는 격월간으로 나오다 보니 단행본 발행이 활발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오후’의 휴간을 바라보는 만화계도 착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가들은 “잘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학과 교수는 “사정이 좋았다는 ‘오후’가 이 정도면 다른 만화 잡지는 더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잡지도 문을 닫는 등 만화 매체 환경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보았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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