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가장 편안하다는 땅 천안. 고려태조 왕건은 다섯마리 용이 각축을 벌이는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地勢)인 이곳이 편해야 세상이 편하다고 해서 처음으로 천안이라 불렀다.천안은 후삼국시대 미륵불이 미래세상을 구하기 위해 현신하는 지상낙원 '도솔천'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고려때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풍수지리 관련 고서 도선비기에는 천안을 한반도의 10대 명승지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또 천안시지에는 천안 목천을 충북 진천과 함께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鎭木之間 可活萬人之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저런 얘기가 나돌았지만 서울과 너무 가까워 내심 후보지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민들은 막상 행정수도 후보지에 포함되자 의외라는 표정이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들은 "풍수지리적으로 천안만한 곳도 없다"며 기대감도 드러내고 있다.
민족성지 국토중심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79.6㎞)남짓 달려 목천IC를 빠져 나오면 독립기념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목천 일대는 지난 1980년대 전국의 내로라하는 풍수지리 '도사'들이 전국을 샅샅이 누빈 끝에 명당중의 명당으로 손꼽아 독립기념관 부지로 선정된 곳이다.
독립기념관을 품에 안은 흑성산(해발 519m)에서 내려보면 좌측으로 광활하게 논과 밭, 야산이 펼쳐져 있다. 이곳이 행정수도 후보지로 선정된 2,230만평에 달하는 목천 일대이다. 뒤로 보이는 천안과 아산 시가지가 행정수도 이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더욱 우뚝 솟아보이는 백운산(243m) 옆으로 충북 진천과 충남 연기가 마치 한 손에 잡힐 듯 지근 거리에 있다.
주민 오재선(46)씨는 "천안만큼 교통 지리 풍수 등 행정수도로서 필요한 여건을 갖춘 곳이 없다"며 "보상문제만 무리없이 해결되면 최고의 입지가 될 것"이라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영호남 연결 사통팔달의 교통망
후보지 가운데 천안처럼 접근성이 뛰어난 교통요지도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비롯 경부고속철도와 장항선 철도가 천안시를 관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논산∼천안고속도로는 호남으로 직결된다. 내년부터 수도권 전철이 연결되면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중 요지가 된다.
청주공항과는 불과 16㎞거리이며, 청주 공주 연기까지는 승용차로 20분이면 닿는다. 서울에서 고속철도를 타면 34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행정수도 입지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이처럼 전국 어디서나 손쉽게 접근이 가능한 지역 특성 탓에 천안 일대는 기업과 대학이 앞다퉈 몰려들고 있다. 수도권 및 영호남 기업이 천안에 경쟁적으로 거점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국토의 중간기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중부권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로 떠오른 천안이 서울특별시 '천안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도로망 등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건설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성무용 천안시장은 "지정학적으로 행정수도 이전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국민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지"라며 "신행정수도 건설의 명분과 효율적인 사업추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들러리 아닐까
그러나 서울과 지나치게 가까운 데다 접근성이 뛰어난 게 오히려 후보지 선정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토의 균형개발과 수도권 인구분산이라는 행정수도 이전 목적과 맞지 않고 고속철도 개통 이후 천안은 사실상 수도권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로 등 기반 시설을 이미 웬만큼 갖춰 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잇점이 있지만 높은 땅값이 부담스럽다. 현재 이 지역 땅값은 다른 후보지보다 월등히 높다. 논과 밭 거래 가격이 평당 20만원을 넘어 공시지가의 5배 수준까지 치솟았다.
물과 산이 없는 것도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하천인 병천천이 있으나 공업용수로도 사용하기 힘든 데다 상수도는 대청댐이나 팔당댐 물을 끌어다 사용해야 하는 형편이다.
주민들도 행정수도 후보지 선정에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무작정 반가워 하지는 않았다. 주민 이수길(60·천안시 목천읍)씨는 "행정수도가 아니라도 발전가능성이 높은 곳이다"며 "주민들의 기대는 크지만 다른 후보지의 들러리나 서지 않을까 내심 우려된다"고 말했다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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