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애견을 기르는 주인들은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파출소에 들러야 한다. '견공 신분증'을 갱신하기 위해서다. 신분증 없는 개들이 단속에 걸리면 '슬픈 운명'에 처해진다. 사진까지 붙은 증명서를 받으려면 관리비 명목으로 우리 돈 7만∼30만원 가량을 내야 한다. 대졸 취업자 평균 초봉이 약 17만원인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이렇게 큰 부담까지 지우면서 엄격한 관리를 하는 것은 도시에 사는 개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중국 위생부가 발표한 전염병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광견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 대비 70% 늘어난 1,980명으로 사망률 1위를 차지했다. 사스(SARS)나 에이즈보다 무서운 전염병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애완동물 전문 TV 프로그램도 인기다. '우리 집에 애완동물 있어요(家有愛寵)'가 대표적. 작년 3월 첫 전파를 탄 뒤 지금은 전국 27개 대도시의 주말 저녁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다. 애완동물 관련 해외뉴스를 전하는 '글로벌 애완동물', 전문가가 나와 애완동물 키우기 노하우를 일러주는 '사랑의 주유소' 등으로 꾸며지는데, 최고 인기 코너는 '애완동물 특공대'. 시청자가 촬영해 보낸 각 가정의 애완동물 이야기와 인기스타의 애완동물 사랑 등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오프라인 활동도 다양하다. '미남 미녀 강아지 선발대회'를 여는가 하면, 호랑이 무늬가 있는 고양이들만 모아 '멋쟁이 고양이 대회'를 열기도 한다. 광고주나 협찬사 확보도 어렵지 않다. 애완동물 사료업체가 든든한 자금원이고, 각 지역 대형 동물병원들이 스폰서 관계를 맺고자 경쟁을 벌인다.
1인당 GDP 1,000달러 시대에 막 들어선 중국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중국인들도 애완동물을 키울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의 경우 10% 안팎의 가정이 애완동물 한마리 이상을 키우고 있고, 상하이에서는 비만으로 개복수술 분만을 해야 하는 강아지들 탓에 고민하는 주인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최근에는 헬스센터와 고급 식당까지 갖춘 중국 최초의 '애완동물 전문호텔이 등장했다.
이처럼 급속한 애완문화 확산은 흔히 자녀를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부모만 생각하면 하나로도 족할 수 있지만, 그 위로 올라가면 조부모와 외조부모까지 오직 손주(혹은 외손주)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국인들에게 이제는 사랑을 쏟을 대상이 필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애완동물이 낯선 단어다. 책가방 메고 20리를 걸어서 학교에 가는 자식에게 사랑을 쏟을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남은 밥을 먹어 치우는 대신, 집 잘 지키고 쥐 잘 잡는 개와 고양이와 정 붙이며 살 뿐이다.
/이재민·중국 베이징대 박사과정(중국 문화 및 매체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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