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긴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제조업이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대에 미국이나 유럽의 노사관계 학계에서는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이 영·미와는 다른 기업 지배 구조를 토대로 화합적인 노사관계를 추구하고 신뢰가 강조되는 기업 간 협력을 통한 상품의 꾸준한 품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에 있다고 보았다.
최근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회복 원인은 이러한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 지배 구조 면에서 보면 주주의 이해만이 강조되는 영·미 식과는 달리 종업원과 고객, 거래은행과 지역사회 등의 이해가 같이 중시되는 전통적인 특성이 유지되면서 해외 진출, 합병이나 핵심 상품 생산에 대한 주력 등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무조건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중국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기술을 지키고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숙련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했던 기업들의 국내 회귀도 늘고 있다.
노사관계에서는 고용안정을 위한 임금 삭감, 파견 근로와 성과급제 등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화이트 컬러 업종의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나 블루 컬러를 채용하고 있는 전통 제조업 기업들에서는 여전히 장기고용, 연공급 임금, 기업별 노조, 꾸준한 숙련 양성 및 관대한 사내 복지 등 기존의 일본식 고용관행(Japanese Employment System)이 유지되고 있고 그런 관행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지 않다. 또 모기업과 협력기업들의 관계도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장기적인 신뢰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80년대에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기계, 가전 및 화학제품 등의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일례로 완성자동차가 한 국가의 여러 제조업의 경쟁력의 종합적인 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일본의 경쟁력을 실감할 수 있다. 80년대에 이 시장에서 단일 차종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고장도 가장 적은 자동차는 도요타의 코롤라였다. 그리고 200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종 역시 도요타의 캠리가 되었고 일본차들은 유사한 사이즈와 성능의 미제차보다도 수천 달러씩 비싼데도 잘 팔린다.
SUV나 미니밴, 지프 등의 고부가 가치 차종에서도 일본이 우세하다. 또 독일의 벤츠나 BMW 혹은 스웨덴의 볼보 등이 차지하던 고급차 시장에서도 도요타의 렉서스나 닛산의 인피니티 등이 경쟁자로 등장해서 고급차가 고급사양이나 성능뿐만 아니라 고장도 적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21세기 성장산업인 첨단 가전제품이나 로봇 등에서도 일본의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과 비교하면 국내 제조업의 성장은 그 토대가 흔들리는 심각한 조로화(早老化)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취업 기피와 이공계 대학 진학 기피, 공업고교 교육의 붕괴에서 나타나는 제조업을 경시하는 사회풍조가 심각하다. 또 제조업의 성숙한 성장단계에 맞는 정부의 규제완화적이면서 효율적인 산업정책이나 기초과학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등이 부족하다. 대다수 국내 기업도 자립적인 기술력에 기초한 상품의 품질이나 성능을 강조하는 고부가가치 전략에 소홀하고 경쟁력의 하락을 비싼 노동비용이나 노동조합의 탓으로 돌린다.
더욱이 일본의 사례를 보면 싼 임금을 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나 주주의 이해만을 중시하는 영·미 식의 기업모델이 우리 상황에 맞는지 심각하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제 정부와 기업은 우리의 토양이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기업구조, 노사관계, 기업관계, 경쟁력의 원천을 같이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다.
/정주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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