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제32회 KBS전국육상선수권이 열린 목포 유달경기장. 4초도 안 되는 사이(3초56) 열네 발짝을 쏜살같이 내달린 최윤희(18·김제여고3)가 3m75 높이의 막대를 훌쩍 넘자 200여명의 관중이 "우와∼"하며 탄성과 박수를 터뜨린다. 2위(3m)와는 무려 70㎝ 차이다.다음 도전은 3m85. 넘기만 하면 3일전(15일) 말레이시아에서 작성한 자신의 9번째 한국신기록(3m80)을 깨게 된다. 하지만 최윤희는 3차시기까지 모두 아깝게 실패, "올해 안엔 4m를 꼭 넘겠다"는 다짐과 함께 기록 행진을 다음으로 미뤘다.
최윤희는 한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지존이다.
비인기 종목인데다 3m 바도 겨우 넘던 국내 여자 장대높이뛰기 무대에 4년 전 신데렐라처럼 나타나 3m10의 한국기록을 세운 이래 묵묵히 1㎝씩 기록을 끌어올리며 '마(魔)의 4m 바'까지 20㎝ 남겨뒀다.
김제시청 최 주사(최길용·50)댁 둘째 따님이 육상을 시작한건 초등학교 시절부터. 포환던지기로 지역대회에서 3위까지 했지만 이원(64) 감독 외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원 감독은 "윤희가 진학하는 중학교 체육교사에게 (윤희가)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귀띔했다"고 했다.
최윤희는 1999년 중1때 한 육상대회에 참가했다가 장대높이뛰기와 첫 인연을 맺었다. 최윤희는 "공중에 붕 떴다 싶었는데 키보다 높은 바를 뛰어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했다.
당돌한 아이는 냉큼 이 감독을 찾아가 "장대를 넘고싶다"고 말했고 98년부터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육성하던 이 감독은 제의에 흔쾌히 응했다. 전북엔 장대높이뛰기 시설이 없던 터라 이 감독과 최윤희는 수업이 끝나면 왕복 3시간 넘게 차를 타고 대전까지 가 고작 1시간 훈련했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냥 바를 넘는 게 재미있고 짜릿하다"는 최윤희가 4년간 연습에 몰두한 결과 2m30으로 시작했던 바는 어느덧 3m80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국내에 등록된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30명도 안 되는데다 기량차가 커 동기유발이 안되는 게 문제다.
국내에선 1∼5㎝ 기록경신에 그치는 그가 세계대회만 나가면 40㎝(2001 대만), 14㎝(올해 말레이시아)씩 끌어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4.3m길이에 130파운드(59㎏)짜리 장대를 들고 말처럼 돌진하는 그지만 평상시엔 18세 소녀 그대로다. 말할 때마다 몸을 배배 꼰다고 해서 별명이 '오징어'. 하지만 각오는 남다르다. "그냥 열심히 할거에요. 아직 멀었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때까진 꼭 일을 낼 거에요."
/목포=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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