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의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와 북측의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위원장 김병훈)가 8월 하순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한 '민족작가대회'는 남북의 문인들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적인 행사다. 대회는 참가자들이 평양 시내와 대동강 묘향산 등을 참관하고 삼지연폭포에서 전야제를 가진 뒤 평양에서 본 대회를 연 다음, 백두산 천지에서 해돋이 시각에 맞춰 '통일 문학의 새벽' 행사를 여는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작가회의는 4월 4∼7일 고(故) 문익환 목사 방북1주년 기념 남·북 토론회 참석차 중국 지린(吉林)성의 옌지(延吉)을 방문했다가, 북측 작가동맹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작가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작가회의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는 5월5∼7일 금강산에서 가진 1차 실무접촉에서 행사의 주제와 시기 등에 대한 의견을 모은 데 이어, 6월8∼10일 2차 실무접촉을 통해 행사 규모와 장소에 관해 합의했다. 남측 실무 협상팀은 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과 소설가 정도상 김종광, 강태형 시인 등으로 구성됐고, 북측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장혜명 시인, 소설가 남대현 황원철 등이 나섰다.
남측 실무대표를 맡은 김형수 사무총장은 "북측의 장소 준비 등에 따른 구체적 대회 개최 시기를 정할 3차 실무접촉 날짜를 북측과 논의하고 있다. 이때 참가자 명단과 세부 일정도 확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은 14일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을 통해 작가대회 개최를 보도했다.
분단 이후 남북의 문인들이 만났던 것은 1945년 12월13일이다. 당시 한설야 이기영 등 북쪽에 있던 작가들이 서울에 내려와 남북을 포함한 전국문학자대회의 개최를 결정한 다음 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946년 2월 남북의 의견차로 남쪽만의 대회가 열리고 북쪽도 따로 조직을 만들면서 갈라선 뒤 지금에 이르렀다. 신동엽 고은 김지하 등의 작가들이 문학작품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슬퍼하고 그리움을 표출하는 등 남북의 문학적 만남과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왔지만 실현되지 못했고, 남정현 이호철의 필화사건 등 한국문학사는 분단으로 인한 파행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들어 홍명희 이기영 박태원 이용악 등 월북문인들의 작품이 해금되면서 남북의 문학이 맞닿는 계기가 마련됐다. 작가회의는 88년 7월2일 북측의 조선작가동맹에 남북작가회담 개최를 전격적으로 제안, 이듬해 3월 고은 백낙청 신경림 현기영 김진경 등으로 구성된 남측 대표단 일행이 판문점으로 향했다가 전원 당국에 연행됐다. 이후 문익환 목사와 소설가 황석영씨의 방북 등이 있었으나,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계기로 비로소 남북 문인의 공식 교류에 관한 호의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남북의 문인들은 산발적으로 조우해 만남을 가져왔지만 이번 합의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남북 작가들의 공식적·집단적인 만남'이라는 뜻깊은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
남은 것은 대표단 확정 문제다. 작가회의는 100명의 대표단 구성 기준을 정한 뒤 7월10일께까지 대회 참가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김형수 사무총장은 "남북작가대회는 절름발이 상태로 남아있던 분단문학사를 극복하는 뜨겁고 중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면서 "남북의 작가들은 이 행사를 통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무의식의 공간까지 무너뜨려 '문학의 통일'을 이루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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