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구름이 무겁게 가라 앉은 새벽, 전 형은 우리들을 유월의 신록 속에 남겨두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내가 전 형을 알게 된지 40여 성상, 내게 남아 있는 전 형의 모습은 맑고 아름답기만 합니다.우선 나는 원칙에 충실한 전 형의 생활을 본받으려고 애썼습니다. 1960년대 초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게 칼날을 세우던 시절, 이른바 청맥회 사건 때문에 끌려다니며 고초를 겪다가 고문 끝에 앞니가 부러져 새 의치를 끼고 나를 만났을 때, 전 형은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나라 덕분에 뻐드렁이를 고쳤구먼" 하면서 고초의 후유증을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전 형은 공무원 생활에서도 어긋나 본연의 모습인 학자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물질적 이익 때문에 가지고 있지도 않은 원칙과 정의를 버리는 오늘날의 염량 세태 속에서 전 형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여기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속진을 떠나서 죽림에 묻혀 후학을 훈도하면서 전 형은 이 신념을 더욱 굳혀 나가는 삶을 꾸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전 형은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를 가졌던 경제학자였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에 우리가 처해 있을 때, 전 형은 그 책임을 누구보다도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일한 경제학자였습니다. 환란을 미리 진단하지 못한 학계의 책임을 차가운 머리로 따지고, 이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무너져가는 민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이 경제학계의 임무라고 전 형은 강력하게 외쳤습니다.
전 형은 우리나라 금융계를 정치적 회오리바람 속에서 지키려고 노력한 선각자였습니다. 중앙은행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을 때, 나라경제가 안정되고 통화가치가 유지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전 형은 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이제 전 형이 우리 곁을 떠나고 나니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지금 그를 잃은 깊은 그림자 속에 남겨졌습니다. 녹두장군의 늠름한 기상과 뜻을 핏속에 받은 전 형은 짧으나마 한 삶을 별처럼 살다가 떠났습니다. 전 형이 생전에 즐겨쓰던 '족탈불급'(足脫不及)의 그의 삶에서 우리 남아있는 부족한 벗들은 '째어버리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남은 자의 도리라고 믿습니다. 전 형의 영전에 삼가 분향 재배하면서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윤석범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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