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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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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 지음

입력
2004.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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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 지음·민승남 옮김

민음사 발행·2만5,000원

흰 붕대로 귀를 감싸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스스로 귀를 자를 정도로 격한 광기는 엄습해오는 고독, 그리고 우울증과의 사투 끝에 나온 것이었으나 고흐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됐다.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도 우울의 심리 속에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일반인들이 '멜랑콜리아'라는 낭만적 어휘를 떠올리며 우울증에 대해 모호한 환상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울증의 실체는 참으로 우울하다. 그것은 뼈 속 깊이 사람을 갉아먹는 정신장애다. 하늘 높이 떠있는 태양을 보면서도 침대를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지고,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정신을 추스르기 힘들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하는 폭력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우울증은 뿌리깊이 박혀든다. 치유됐다 싶어 잠시라도 방심하면 어김없이 재발하며 평생을 괴롭힌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성공적인 길을 걷던 저자 앤드류 솔로몬도 1994년 찾아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의 고통을 발판 삼아 "고통의 범위를 보여줌으로써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의 해방을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솔로몬이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치료방법 등 의학적 성과, 심리학적·사회적 의미, 역사적·문화적 배경 등 다각도에서 우울증을 지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솔로몬의 삶에 있어 우울증은 예기치 못한 불청객이었다. 암 선고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 때문에 받은 상처도 치유됐고 첫 소설 '스톤보트'를 출간하는 등 인생이 질서를 찾았다고 믿고 있던 때 우울증이 찾아들었다. 다행히 그는 가족과 친구의 보호 속에 정신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몸과 마음에서 우울증은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자살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에이즈에 걸리기로 작정하고 위험한 섹스에도 빠졌다. 이같은 극단의 위험에도 건강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첫번째 우울증은 가셨다. 그러나 이 책을 저술하기까지 두차례 더 우울증이 발병했다. 우울증은 이제 그의 일부분, 영혼이 됐고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며 재발을 피하기 위해 매일 다량의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우울증의 증상은 환자마다 제각각으로 나타난다. 우울증을 현대의 병, 중산층의 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우울증이 인간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다만 속도를 강조하는 삶, 기술혁신이 초래한 혼돈, 인간관계의 소외가 두드러지게 된 20세기에 급격히 증가했을 뿐이다.

솔로몬은 동료환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우울증의 실상을 파악하고, 풍부한 자료 조사 및 히포크라테스부터 프로이드, 푸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서를 통해 우울증을 분석하고 있다. 조사 지역도 미국에서 아프리카, 그린랜드, 캄보디아 등지로 확대된다. 기존의 우울증 치료가 문제의 절반밖에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약물치료와 정신상담 뿐만 아니라 대체요법 등 다양한 치료방법을 소개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두 배나 더 많이 걸리는 이유 등 우울증의 양상, 우울증과 약물 중독이나 자살의 관계도 다룬다. 우울증에 관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셈이다.

솔로몬은 1998년 '뉴요커'에 우울증에 관한 칼럼을 기고한 뒤 수천통의 편지를 받은 것을 계기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할 말이 많은 주제"였다. 우울증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대신 오히려 삶의 진실을 통찰하게 된 저자는 희망의 조언을 준다.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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