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미술관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웅진닷컴 발행·8,500원
미술관에서 가족끼리 다니는 관람객들을 보면 제일 부럽다. 아이들 손을 잡고 아빠와 엄마가 가이드가 돼서 그림을 설명해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림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따분하고 지루하며 다리만 아픈 고역일 뿐이다. 행복한 미술관'은 처음으로 미술관 나들이에 나선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처음엔 가족들이 엄마의 성화에 억지로 따라 나섰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차츰 따스한 마음과 웃음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무슨 일인지 데면데면한 아빠와 엄마, 피곤하다며 심통만 부리는 형, 이를 지켜보는 주인공이 등장인물이다.
'돼지책' '고릴라' '미술관에 간 윌리'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자 앤서니 브라운은 일급작가답게 기발한 재치와 상상력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독자들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서먹서먹하고 어색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아빠와 엄마의 몫이다. 아빠는 미술관 가는 길에 뾰로통한 형에게 말을 건다. "고릴라 콧구멍은 왜 크게?" "몰라"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형에게 아빠는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이 크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명화에 대한 안내도 친절하고 재미있다. 한 가정의 불행을 그린 오거스터스 에그의 작품 '과거와 현재 1' 속에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끌어내기도 하고, 전쟁장면을 그린 존 싱글톤 코플리의 '퍼슨 소령의 죽음'을 두고는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얼마나 끔찍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 형태가 비슷한 두 그림을 그려놓고 "그림의 다른 곳을 찾아보세요"라며 관심을 유도하고, 명작을 흉내낸 패러디도 보여준다.
한 장 씩 넘길 때마다 재치와 유머가 가득하다. 어느 새 미술관을 나오는 가족의 표정은 밝아지고, 아빠의 손은 엄마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 화면을 지배하는 초현실주의 화풍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며 세계 명화를 세밀하게 그려넣은 솜씨도 대단하다.
이 책의 원제는 '그림놀이'(The Shape Game). 한 사람이 어떤 모양을 그려놓으면 다음 사람이 그럴듯한 형상을 완성해가는 놀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자세. 이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책은 브라운이 1년 여 동안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며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보고, 또 그리면서 구상했다고 한다. 여기에 브라운 자신이 어머니 생일에 가족과 함께 미술관을 둘러보고, 평생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됐다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있다.
올 여름에는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등 세계적인 화가들의 국내 전시회가 잇따라 열린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던 가족들도 얼마든지 그림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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