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실린 나의 칼럼 한편이 그토록 큰 반응을 불러일으킬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그 글을 읽고 소설가 이병주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김 교수, 나도 평생에 그런 글 한 편만 쓰고 죽었으면 한이 없겠소." 물론 반은 농담이고 반은 격려이었겠지만 당대의 저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이던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그 글 한 편의 영향력이 대단하였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1985년 4월4일 한국일보 목요칼럼 '동창을 열고'에 실린 그 칼럼의 제목은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글의 원래 제목은 사라지고 모두가 "3김 낚시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 때만 해도 대단한 힘을 지녔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3김을 향해 "차제에 낚시나 가는 것이 어떠냐"라고 한 마디 던졌으니 본인들은 물론이요 3김을 나름대로 절대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때는 이미 지났다"라는 한 마디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총장이던 네이튼 퓨지가 총장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놓고 이사회에 사표를 던지면서 남긴 말이었다.
당시 하버드대 학생들 중 극소수가 대학 당국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여 대학의 행정관을 점거함으로 대학 당국의 행정 업무를 완전히 마비시킨 데서 비롯되었다. 이 엄청난 문제를 놓고 퓨지 총장은 교무위원회를 소집하였는데 거기서 경찰을 불러들여야 하느냐 불러들이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최종적 결정은 총장이 내릴 수 밖에 없었는데 퓨지는 경찰을 불러들이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경찰이 들어와 행정관을 점거한 학생들을 모조리 들어내어 학교의 행정 업무는 정상화가 되었고 점거 학생들은 순수히 귀가하였으므로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퓨지 총장은 자기의 판단이 꼭 옳은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하버드 총장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물러났는데 그 당시 그 일이 하도 감동스러워서 대통령을 꿈꾸던 3김에 대하여 제발 대통령 될 꿈을 포기하고 정계를 은퇴해 달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그 글 때문에 돌에 맞고 칼에 찔린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받은 격려의 편지와 분노의 편지의 비율은 95대 5였다. 그 때에도 국민은 내 뜻에 찬동하고 있었다. 3김은 물러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2김은 대통령을 지냈고 1김은 국무총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어찌하여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는 미덕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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