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학번 김 대리가 넥타이에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붉은 조명 속에서 열창하고 있다. 한때 운동권 노래였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랫말이 자막으로 흐르는 노래방 TV화면의 배경에는 눈처럼 하이얀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인이 교태를 뽐내고 있다. 작가 박영균의 1996년 작 아크릴화 ‘86학번 김 대리’다.세월은 변했고, 운동권 노래와 노래방 문화를 결합시킬 줄 알던 우리의 잘 나가던 386세대 ‘김 대리’는 지금 ‘실업자 김씨’가 됐는지도 모른다. 디자이너ㆍ사진가 그룹 AGI의 포스터 ‘실업자 김씨’의 주인공 ‘불혹을 코앞에 두고 일터를 잃고 만 김씨(38세)’는 베테랑 기능공으로 묘사됐지만, ‘김 대리’도 처지는 다를 바 없다.
두 작품은 사비나미술관이 18일부터 8월 6일까지 여는 ‘리얼링(realing) 15년’ 전에 나온다. 전시 제목의 리얼링(real+ing)이란 낯선 조어는 리얼리즘에 대비시켜 만든 말이다. 80년대 한국미술의 리얼리즘이 민중미술을 의미하는 좁은 뜻으로 고착화됐다면, 90년대 이후의 세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을 이런 용어로 표현했다고 전시 기획자인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말한다.
작고한 조각가 구본주를 비롯해 방정아 배영환 양아치 이부록 정연두 조습 등 작가 35명과 거리의미술, 믹스라이스, 플라잉시티 등 창작그룹 16팀이 작품을 냈다. 이들은 생태, 여성, 소수자, 인권, 복지, 반전, 평화의 문제 등 우리 삶의 현장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미술양식이나 유파를 일컫는 것이 아닌 리얼리즘적 태도라고 말한다. (02)736-4371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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