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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폐광오염' 10년뒤…광명 가학동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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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폐광오염' 10년뒤…광명 가학동 르포

입력
200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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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마을 뒷산 자락에 거대한 구릉처럼 겹겹이 쌓인 폐광물 가루가 한 마을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경기 광명시 가학동 도고네 마을. 20년 전 폐광된 가학광산에서 흘러내린 광석 가루와 침출수는 1995년 이 마을 논에서 생산된 쌀에 '카드뮴 오염 쌀'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주민들의 카드뮴 중독 우려가 제기되면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이타이이타이병' 가능성까지 나왔다.9년 후 다시 찾은 광명 가학광산. 폐광석 더미가 거대한 봉우리와 계곡을 이뤘던 자리에는 깨끗하게 페인트칠 한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섰고, 카드뮴 쌀이 나오던 논은 간데 없고 장미농원이 펼쳐져 있다. 시퍼런 중금속 침출수가 흘러내리던 폐광 갱도는 천연 냉장 시설의 새우젓 저장고로 쓰이고, 비만 오면 광석가루가 범벅이 돼 흘러내리던 마을 앞 하천에는 미나리와 물풀들이 무성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타이이타이병의 공포에 떨었던 주민들은 곧 들어선다는 생태공원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95년 3월13일자 한국일보에는 '폐광인근 주민들 카드뮴 적색경보-이타이이타이병 상황 유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중앙대 의대 장임원 교수팀이 가학광산 인근 주민들의 혈액과 소변을 조사한 결과 카드뮴 농도가 노동부의 근로자 건강관리기준치 10ppb를 넘는 주민이 3명이나됐고 17%인 45명의 주민에게서 4.1ppb 이상의 카드뮴이 검출됐다. 주민 중 1명은 카드뮴 농도가 23.5ppb로 일반인 평균치보다 10배 이상 높아 이타이이타이병의 오염체계와 유사하다는 충격적 보고였다. 이후 서울대 농업개발연구소 조사에서 쌀과 야채에서도 다량의 카드뮴이 검출됐다. 카드뮴 추가 축적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오염된 쌀과 지하수 섭취를 중단하라는 권고까지 내려졌다.

"당시 광명에서 생산된 쌀이나 채소가 팔리지 않아 정부가 수거해가고, 주민들은 땅값 폭락으로 아파도 드러내 놓고 말도 못한 채 정부에 대한 원성만 극에 달했지요." 주민 이장수(53)씨의 회고다. 가학광산은 1916년부터 아연 납 구리 등을 채광하다 73년 폐광됐으나 주변에 쌓인 30만여톤의 폐광석 더미의 미세한 중금속 입자들이 바람에 날리거나 빗물에 씻겨 도고내천과 인근 농경지로 유입돼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됐고 여기서 자란 쌀과 물을 먹은 주민들의 몸에 카드뮴이 축적된 것이다. 최근 이타이이타이병 논란을 불러일으킨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마을과 유사한 셈이다.

이후 가학광산은 우리나라 폐광오염방지사업의 첫 사례가 됐다. 가장 먼저 5개의 봉우리 형태로 산더미처럼 쌓인 폐광석 가루에 대한 유출방지 작업과 하천 준설작업이 시작됐다. 광석더미 둘레를 파 부직포를 깔고 양송이버섯퇴비와 쇠똥 석회석 등을 섞어넣어 '천연 필터'를 만들었다. 당시 오염방지사업의 기술제공자였던 한국자원연구소 홍영국 연구관은 "버섯퇴비는 황 환원반응을 일으켜 중금속을 중화한다"고 했다. 이렇게 1차 방벽이 설치되고 그 주변에 광석 가루게 흘러내리지 못하게 높이 3∼9m의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을 쳤다. 그 위에 빗물이 잘 스며들지 않도록 점토를 덮어 복토를 했으며, 부지를 다지고 나무를 심어 2만여평의 넓은 소각장 부지가 만들어졌다.

도고네천과 목감천을 따라 4.2㎞구간에선 포크레인으로 하천 바닥에 깔린 광석가루 더미를 퍼냈다. 카드뮴 쌀이 나오던 논은 1m 이상 흙을 부어 복토를 했다. 87만평의 논이 새로운 흙으로 가득찬 밭이나 대지로 변했고 도로나 하천과 높이가 같았던 논들이 이제 모두 언덕 위 들판이 됐다.

카드뮴 중독으로 뼈가 약해질 우려가 높은 주민 22명은 96년부터 비타민D와 칼슘병합제인 오스칼을 먹었고 매년 정기 검사를 받았다. 광명보건소 표옥정 보건사업과장은 "주민들에 대해 3년간이나 방문간호사업을 했으며 노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 외에는 임상증세가 없어 98년 말 종료됐다"며 "체내 중금속의 반감기가 10∼15년인 만큼 그 동안의 변화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광명시는 지난해부터 이곳 가학광산 일대 38만평을 거대한 생태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갱도가 그대로 남아있고 한여름에도 찬바람이 나오는 폐광을 활용해 광산체험코스를 만들고, 대규모 식물원과 허브공원, 실내 스노보드장, 워터파크, 생태농업체험마을 등 6개 테마마을을 2010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도고네 마을이 카드뮴 오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폐광석 가루 대신 소각장에서 나오는 다이옥신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최악의 폐광 중금속 오염지였던 가학광산의 변화는 주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야할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국에 흩어져있는 폐광의 처리 방향에 하나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광명=김호섭기자 dream@hk.co.kr

사진=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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