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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37>자유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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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37>자유의 여신상

입력
200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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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6월17일 자유의 여신상이 프랑스 배 '이제르'호에 실려 뉴욕항에 도착했다. 오늘날 '자유국가' 미국의 상징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조물 가운데 하나가 된 높이 47.5m, 무게 225t의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10주년을 맞은 이듬해 10월28일 미국 대통령 스티븐 클리블랜드의 주재로 헌정식을 가진 뒤 베들로섬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베들로섬은 1956년 자유의 여신상 이름을 따 리버티섬으로 이름을 바꿨다.정식 이름이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de la Liberte Eclairant le Monde)인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1876)을 기념해 프랑스 국민이 미국 국민에게 기증한 것이다. 100주년 한 해 전인 1875년 파리에서 조직된 민간단체 '프랑스-아메리카 연합위원회'가 돈을 모아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에게 설계와 제작을 맡겼으나, 작업 진척이 늦어져 110주년에야 뉴욕에 서게 됐다. 작업 전반을 지휘한 것은 바르톨디지만, 에펠탑 설계자로 유명한 귀스타브 에펠도 내부 구조 설계를 도왔다. 1884년 1월에 조립이 끝난 여신상은 한동안 파리의 명물 노릇을 하다가 이듬해 각 부분마다 번호가 매겨지면서 완전히 해체된 뒤 214개의 상자에 담겨 기차로 항구도시 루앙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이제르'호에 실려 5월21일 미국을 향해 떠났다.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고 세 해 뒤인 1889년 파리 센강의 시뉴섬에도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 모양은 뉴욕 것과 같지만, 크기는 1/4이다. 이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기증에 대해 프랑스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프랑스혁명 백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파리의 미국인회가 기증한 것이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국과 프랑스가 지금처럼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는 아니었던 셈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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