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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07>'민족의 설움' 담긴 금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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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107>'민족의 설움' 담긴 금강초롱

입력
2004.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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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현충일의 일입니다.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국기를 달라는 안내전화였습니다. 아참! 이어 아파트단지내 방송이 계속됐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국기달기 시범지역으로 결정됐는데 모두 국기를 잘 게양하면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에 국기를 다는 이유가 아파트에 부여될 그 어떤 혜택 때문은 절대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씁쓸한 마음을 거두고 국기를 달고보니 그렇게 많은 방송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지 않은 곳이 10%정도 되더군요. 시범지역이 아니라는 건너편 단지에는 국기를 달지 않은 곳이 훨씬 많았습니다. 국가를 위해 둘도 없는 꽃같은 목숨을 내어놓은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싶어 국기를 달면서도 절로 숙연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탓에 족쇄처럼 슬픈 이름을 가지고 지금껏 살고 있는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금강초롱입니다. 금강산에서 발견되었으며 초롱처럼 생긴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워낙 희귀하고 아름답고, 의미도 있어 화장품 광고에도 나오고, 유명한 만화가의 작품 중에 '금강초롱을 찾아서'라는 제목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운 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싶으시겠지만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말고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부르는 학명(學名·scientific name)이 문제입니다.

사실 금강초롱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식물입니다. 그냥 그 식물종만 특산이 아니라 이 식물이 속한 집안 전체가 특산인 귀한 식물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식물의 학명은 바로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ca Nakai)입니다. 학명의 앞 부분은 그 식물의 집안(속명)을 의미하는데 바로 우리의 금강초롱 집안 이름이 하나부사 즉 조선주재 일본 공사관 초대 공사였던 하나부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사연인즉 1902년 우치야마라는 사람이 금강산 유점사 근처에서 이 새롭고 진귀한 식물을 발견했는데,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식물이름 상당수를 정리하여 학명 뒤에 자신의 이름을 수없이 붙인 나카이(Nakai) 교수가 이 꽃의 이름에 조선식물조사를 가능케 한 초대 공사 하나부사의 공을 기려 속명에 붙였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옳게 서지 않는다면 우리 풀 한포기에 조차 우리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듯합니다.

그런데 이 금강초롱의 학명에 흥미있는 이야기가 보태어집니다. 북한의 이야기인데, 북한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의 마음처럼 화가 났던지 이 식물의 속명을 금강사니아(Keumkangsania)로 바꾸어 부릅니다. 하지만 이는 국제식물명명규약이라는 것을 통해 결정되는 학명에 대한 약속을 혼자 위배하는 것이니 이 역시 말도 안되는 독불장군같은 일이지요. 세상에서 혼자 고집하는 북한의 자세도, 금강초롱의 사연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도 현충일에 썰렁한 모습으로 펄럭거리던 국기의 모습과 교차되며 지금까지도 답답한 마음이 이어지네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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