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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디지털 민주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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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디지털 민주주의' 두 얼굴

입력
200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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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 행위의 대부분을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비롯한 여러 디지털 매체로 하게 될 것이다. 데스크 톱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신발이나 허리띠, 안경 모양 등의 컴퓨터를 몸에 걸치고 다니게 된다. 음성인식 기술의 발달로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목소리만으로도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며 인터넷에 무선으로 늘 연결돼 있어 언제나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동영상이나 텍스트로 검색하거나 저장해 둘 수 있게 된다.이렇게 되면 대중매체에 기반한 뉴스의 유통, 여론의 형성과 표출, 정치 과정 참여 등은 기본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과 원칙들은 대부분 국가 구성원의 사회적, 정치적 행위가 인쇄매체 혹은 텍스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책과 신문이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언어공동체에 기반한 하나의 사회, 즉 근대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출판(publication)이라는 말 자체가 텍스트를 대중화함으로써 대중(public)을 생산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내가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뉴스를 나 이외의 다른 구성원들도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 나아가 그 사건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견해를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로 느끼리라는 확신. 이러한 믿음과 확신으로부터 우리 의식과 여론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여론의 주체로서의 평등한 개인이라는 관념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각자가 원하는 것을 각자가 선택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매체는 각각의 텍스트 소비자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텍스트를 소비하게 함으로써 우리 의식의 기반을 와해시키고 있다.

이미 인터넷에는 독자가 원하는 내용만을 편집하여 개개인에게 별도의 뉴스를 제공해 주는 회사가 많으며 독자 마음대로 편집하여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어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정보로서의 뉴스와 그러한 뉴스를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대중이라는 개념은 점차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료타르가 말하는 '감각의 공동체'의 기반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에코의 말처럼 우리는 다시 새로운 중세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의 디지털화는 결국 국가를 정보의 저장과 흐름의 체계로 변환시킨다. 이제 국가는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 그 자체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정치적 권력은 컴퓨터 네트워크 속을 흐르는 정보에 대한 통제 가능성으로 그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새로운 의미의 국가와 권력을 우리 의식을 상실한 대중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겠느냐의 문제다.

컴퓨터와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 관리는 이제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권력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다. 국가라는 데이터 베이스를 어떠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 베이스 관리에 있어서의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은 인쇄매체 시대가 탄생시킨 근대 민주주의의 여러 원칙(다수결의 의사 결정 방식, 대의민주제도 등등)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하는 것은 이론적 논의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거기에는 도덕적 판단과 역사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새로운 제도의 창출이 늘 요구하는 것처럼.

디지털 매체를 통한 여론의 수렴과 표출의 적절한 방안을 포함하여,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민주적 선출, 데이터 베이스와 관련된 부정부패의 통제, 불법 데이터 베이스 운용에 대한 규제 방안 등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매체는 민주주의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김주환 연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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