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의 '신문팔이 할머니'가 올림픽 성화를 날랐다. 주인공은 멕시코의 한 신문 가판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호사리오 이글레시아스(사진) 할머니. 그녀는 세계육상연맹(IAAF)이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할머니다. 85∼90세 부문 400m와 800m 세계기록은 물론이고 90세 이상 부문 100m(38초02)와 200m(82초29) 세계신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녀의 본래 직업은 신문팔이다. 지금도 멕시코 전통 스카프인 레보조(rebozo)로 얼굴을 감싼 채 싸구려 티셔츠와 밑창이 닳고 닳은 스니커즈를 신고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신문과 잡지를 팔고 있다.할머니는 2004아테네올림픽 성화봉송주자로 뽑혀 15일(한국시각) 멕시코에 당도한 성화를 들고 수만의 인파가 모인 멕시코시티 거리를 달렸다. 그녀는 "내가 포함돼 너무 자랑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평범한 신문팔이 할머니가 백수(白壽·99세)를 앞두고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다시 올림픽 성화 봉송을 하게 된 사연은 한편의 드라마다.
1910년 8월31일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다. 동트기 전 일어나 오전9시까지 신문을 모으고 배달하며 매일 11㎞를 뛰었다. 그렇게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육상선수 출신의 한 신문독자가 할머니에게 제안을 했다. "정말 잘 뛰는데 한번 선수로 출전해보세요." 그때 할머니의 나이는 80세. 그는 불혹이 넘은 축구 트레이너 출신 손자의 도움으로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훈련이란 게 그녀의 말처럼 "신문을 들고 열심히 뛰었어요"가 전부다. 그녀가 신문배달을 그만둔 것은 고작 2년 전(91세) 일이다.
대회에 나가자마자 우승하기 시작했다. 지역대회와 국내선수권 200m 400m 1,500m를 차례로 석권한 할머니는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 8개국에서 열린 세계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녀의 다음 목표는 내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이다. 요즘 손자와 함께 동네 공원을 1시간씩 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의 허름한 가방엔 금 은 동메달이 가득하다. 두 딸과 15명의 손자, 30명의 증손자, 5명의 고손자 등 할머니의 피가 흐르는 자손 숫자보다 메달이 더 많을 지경이다. 순식간에 유명해진 할머니는 별명인 '차이또'를 딴 홈페이지(www.chayito.com)도 갖고 있다.
멕시코 정부도 할머니의 공로를 인정해 2001년부터 그녀에게 매달 4,000 페소(40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신발업체, 신문배달조합 등 세계신기록을 보유한 할머니를 후원하겠다는 업체가 줄을 잇지만 할머니는 그들에게 해외 대회 출전경비만 지원 받을 뿐이다.
그녀는 오늘도 자신이 직접 산 육상화를 신고 뛰고 또 뛰고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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