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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국가 아젠다-진단과 대안]<3>성장 vs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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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국가 아젠다-진단과 대안]<3>성장 vs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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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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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2기 경제정책이 성장과 개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안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지 14일로 한달이 지났지만, 경제계는 아직까지 경제정책의 방향을 확신하지 못하고 "아직은 좀더 지켜볼 때"라는 분위기이다.최근 노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경제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분양원가 공개 및 부유세 도입 반대 등 실용주의 경제관에 입각한 시장 친화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경제정책의 '우향우'를 기대하는 시각도 많아졌다. 실제로 재벌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축소 등 예민한 사안에 재계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도 이 같은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개혁 저지세력에 의한) 경제 위기 과장론'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한 데다 열린우리당 핵심인사와 청와대 참모진의 성향을 감안할 때 경제정책의 향방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성장론'에 힘 실리나

노 대통령은 최근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에 대해 "분양 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고 장사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시장 메커니즘이 존재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도입 주장에 대해 "부유세 같은 것을 하려다 저항에 부딪치면 진짜로 해야 할 개혁도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분배 논란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론을 강조하고 쌀 수입 개방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적 개방 체제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개혁이나 분배보다는 성장과 시장주의에 가까운 발언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 대통령의 경제관을 단정적으로 판단하긴 힘들다. 어려운 경제현실을 의식해 시장친화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의 경제관은 개혁과 분배 쪽에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또 노 대통령을 근거리 보좌하는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대표적인 개혁파인 데다 여당 내에서도 개혁에 대한 주문이 강해 성장과 개혁의 줄타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재계는 무엇보다도 노동계의 하투(夏鬪),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문제,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부작용 해결방안, 산별노조로 가는 문제, 기업의 사회공헌 문제 등 수두룩한 현안에 대해 노 대통령이 어떤 자세를 취할 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 리더십부터 세워라

총선 후 불거진 성장과 개혁을 둘러싼 논쟁은 보수와 진보세력간 대결구도를 고착화시키며 필요이상으로 증폭된 측면이 많다. 경제를 살리는 데 전력을 투구해야 할 마당에 불필요한 이념 논쟁에 에너지를 소모한 격이다. 성장을 하든, 개혁을 하든, 성장과 개혁을 동시 추진하든,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호(號)'의 선장이 확고한 중심을 잡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노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직접 언급이 늘어나면서 경제계의 이목이 대통령의 입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경제계는 경제부총리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따라서 총선 전까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도 최근 당과 청와대의 틈바구니에서 정책 조정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경제 현안 하나하나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 경제부처의 힘이 약화하고 경제정책도 구심점을 잃게 된다"며 "경제에 관한 한 부총리가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 본보, 국민의식 여론조사

성장 우선 50.5%, 개혁 우선 47.8%. 국민들은 근소하게나마 '성장' 쪽의 손을 들어줬지만 오차 범위 등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차이로 보기는 힘들다. 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미디어리서치에 의뢰,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는 정치권의 치열한 논란 만큼이나 경제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둘러 싼 국민들의 시각도 팽팽히 맞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혁이 성장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 절반의 요구라면, "개혁이 중단되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나머지 절반의 시각인 것이다.

인식의 차이는 세대 별, 지역 별로 비교적 확연히 나타나 이념적 분열 양상을 띠고 있다. 연령별로는 20대의 61.5%가 '개혁'을 지지하는 반면 50대의 경우 63.4%가 '성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지역별로는 강원 지역(81.7%) 호남 지역(63.4%)에서 개혁 선호 응답이 많았던 반면 충청 지역(58.3%) 부산·경남 지역(57.1%) 등에서는 성장 우선 정책 지지도가 더 높았다. 또 직업별로는 학생들의 61.3%가 개혁을 중요시한 반면, 자영업자의 57.4%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강원·호남 지역의 20대 학생' 들이 '개혁 우선 정책'을 월등히 지지하는 반면, '충청·PK(부산·경남) 지역의 50대 자영업자'들은 '성장 우선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분배 우선 정책을 펼 경우 경기 위축 등의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 계층, 전 연령별로 높게 나타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파장이 많이 있을 것이다'(17.2%) '약간 있을 것이다'(59.1%) 등 전체 응답자 4명 중 3명 이상(76.3%)이 분배 우선 정책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했다. 국민들은 성장이든 개혁이든, 혹은 성장이든 분배든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칠 경우 부작용을 부를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경제 정책의 주도 주체가 어느 곳이 되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절반 가량(43.4%)이 '재정경제부 등 경제 부처'라고 응답한 것 역시 당·정·청 간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에 대한 국민들의 냉철한 판정으로 보인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수치로 본 성장 vs 분배

'성장 우선이냐, 분배 우선이냐'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성장, 분배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제의 현실 때문이다. 각종 통계 수치는 나눠먹을 파이도 적을 뿐더러 그나마 일부 계층에게 편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위태로운 성장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에 비해 5.3% 성장했다. 3.7%(2003년 1분기), 2.2(2분기), 2.4%(3분기), 3.9%(4분기) 등 지난해의 저조한 성장(연간 3.1%)에 비하면 완연한 회복세다. 하지만 내용은 위태롭다. 26.9%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출 증가율에 힘 입은 '외끌이 성장'에 불과했기 때문. 내수 지표인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 증가율은 각각 -1.4%, -0.3%로 나란히 1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다.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이 1분기에 GDP 증가율에 못미치는 4.6% 증가에 그친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그나마 전분기 대비 GNI는 0.4% 증가하는데 그쳐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구매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 수치 상 성장을 국민들이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열악한 분배 구조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0∼1의 수치로 표현하는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소득이 균등하다는 것을,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2003년 기준 우리나라의 지니 계수는 0.306. 외환 위기 이전인 1996년 0.298에서 2000년 0.358로 급등한 뒤 차츰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절대적으로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주범인 토지의 경우 불평등 정도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연세대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93년 기준 '토지 지니계수'는 0.8607. 사실상 '완전 불평등'에 가까웠다. 종합토지세 납부 자료 분석 결과 상위 5% 가구가 전체 개인 소유 토지 가운데 금액 기준으로 절반 이상(50.6%)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측은 "비록 10년 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토지 소유 구조는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만큼 분석 결과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가처분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 빈곤 가구 비중이 96년 5.92%에서 2000년 11.47%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통계(한국개발연구원)나, 대기업 노동자 한달 평균 임금을 100으로 할 때 중소기업(종업원 5∼299명) 노동자 임금 수준이 99년 71.0%에서 지난해 65.8%로 떨어졌다는 통계(노동부) 등도 열악한 분배 구조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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