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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영광 법성포 숲쟁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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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영광 법성포 숲쟁이숲

입력
200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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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군 법성면 숲쟁이숲에 다다르자, “찌르륵, 찌르륵”하는 찌르레기의 소리가 멀리 칠산 바다 고깃배의 “통통통”하는 소리와 어울려 가슴을 울리고, 포구의 짭짤한 갯냄새가 숲에서 싱그럽게 가라앉는다. 밀화부리 떼는 뾰족한 날개깃으로 바람을 가로지르며 팽나무 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고, 가지에 남는 건 열매를 건네준 넉넉한 흔들림뿐이다.법성포구는 좁은 만구(灣口)에 뻗은 작은 반도의 남안에 자리 잡아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는 천연의 항구이다. 고려 성종 때 이곳에 조창(漕倉)이 처음 설치되어, 영광, 흥덕 등 12개 군의 세곡(稅穀)을 받아 저장했다. 조선시대에도 조창제도는 계속 실시되었으나,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해 선박의 출입이 불편하여서 조창제도의 폐지와 함께 쇠퇴하여, 오늘날 ‘영광굴비’ 어항의 중심지로 되었다.

숲쟁이숲은 법성포를 둘러싼 인의산(仁義山)의 남쪽 산 능선을 따라 300㎙에 걸쳐 조성돼 있다. 홍농읍으로 가는 지방도로를 경계로 동쪽의 법성리 숲과 서쪽의 진내리 숲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경계부근의 위치가 낮아서 찬 북서풍이 쉽게 마을로 넘어왔을 것이고 외적의 눈에도 쉽게 띄었을 것이다. 이 숲은 법성진성(法聖鎭城, 1514년)을 쌓을 때에 조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능선을 따라 고목들이 심겨져 있어서 마치 성을 쌓은 듯한 모습이다.

본래 법성포의 숲은 현재의 수세(樹勢)보다 커서 인의산 능선을 거의 다 덮기도 했으나 한국전쟁 때에 진지구축으로 나무가 많이 없어졌다. 그 후 1970년대 초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될 때, 이 숲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가 나면서 고목 30여주가 피해를 입기도 했다.

풍수상 법성리숲의 형세를 결정하는 인의산은 해면에 접하여 와우형(臥牛形)을 이룬다. 그래서 인의산 능선을 가로지르는 차도가 난 후에 주민들은 소의 배에 해당하는 부근으로 도로가 지나므로 법성의 주맥(主脈)이 끊겨 법성에 해가 미친다고 믿어 양 숲을 연결하는 부용교(芙蓉橋)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숲쟁이숲의 우점 수종은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등인데, 찌르레기가 느티나무 고목에 생긴 구멍에 둥지를 만들었고, 파랑새는 느티나무의 까치 둥지에서 새끼를 기르고 있다. 느티나무 중 가슴높이 지름이 가장 큰 것은 136cm에 달한다. 최근 어린 느티나무를 식재했다.

음력 5월 5일에 단오제를 가지는데, 법성포의 단오제는 법성포 주민이 비용을 갹출하여 마을 주민이 서로 나눔의 장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숲쟁이숲은 두 개 마을에 걸쳐 있고 마을마다 당산나무를 갖고 있어 매년 정월 진내리 당산에서 법성리 당산으로 돌면서 동제를 지낸다. 영광 굴비의 명성엔 인근 염산(鹽山)의 소금맛도 중요하지만 숲쟁이숲에 의해 조절된 북서풍의 찬 바람과 앞 갯벌의 따뜻한 바람, 그리고 햇빛의 조화에 의해 영광굴비 고유의 맛이 형성됐다고 해야할 것이다.

또 옛 사람이 법성포 숲쟁이를 만들 때, 외침을 막는 군사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찬 북서풍을 막아 마을의 기후를 온화하게 하고, 넉넉한 자연과 사람과의 풍요로움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여유로움은 바쁘게 사는 우리가 한번쯤 되새겨봐야할 것 같다.

/박찬열ㆍ국립산림과학원 박사 chandra@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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