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공사중이다. 지난 27년간 개방화 시대를 이끌었던 성장엔진을 다 뜯어 고치고 있다. 가능한 곳부터 먼저 발전시킨다는 선부론(先富論), 나라가 기업을 키워나가는 국유기업 보호, 외국이 자본과 부품을 대고 중국이 사람을 대는 개발도상국형 외자유치도 다 공사 대상이다. 지금 중국의 화두는 균형성장·구조개혁·수입대체다.중국 공산당이 지난해 10월 제16기 3중전회에서 향후 최대 역점사업으로 채택한 동북3성 개발은 이런 후진타오(胡錦濤)식 성장전략의 압축판이다.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등 과거 만주대륙으로 불렸던 이곳은 서부내륙과 함께 불균형성장, 낙후지대의 대명사였다. 중공업이 가장 발전했지만 중국 국유기업의 3분의1이 위치, 마지막 남은 계획경제의 서식지로 평가되던 곳이다.
이곳에 최근 민영화, 구조조정, 인수합병(M&A), 성과급, 부품산업 등 중공업 부활, 외자유치 등의 표현이 정부 관계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아무런 기반이 없어 아직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인 서부대개발과는 다른 양상이다.
동북 3성의 중심도시로 랴오닝성의 성도(省都)인 선양(瀋陽). 시내에 조금 못 미쳐 펼쳐지는 훈난(渾南)지구에는 아파트지구, 상업지구, 정보통신지구, 공원 등의 개발이 한창이다. 제너럴일렉트릭, 미쓰비시, 한국의 SR개발 등으로부터 외자를 유치, 허허벌판에 도시를 건설한 한국 강남을 모델로 개발중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개발구 건설을 억제하고 있지만 이곳만큼은 예외다. 인민대 우진훈(禹辰勳) 교수는 "점-선-면 발전전략에서 현재 '선'(상하이·선전 등 동부연안)까지 왔고, 이제부터 면을 채워야 한다"며 "면만 제대로 개발되면, 향후 50년은 넉넉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농간 격차, 지역간 격차 심화에 따른 체제 위협을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축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중국 지도부가 이곳에 쏟는 정성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5월 이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벌써 4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동북3성의 성장전략 1호는 외자유치를 통한 국유기업 개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낡은 국유기업을 외국에 팔아 개조하는 것이다. 선양시정부가 지난달말 결코 적지않은 예산을 들여 한국 주간 행사를 연 것도 외자유치와 국유기업 세일즈를 위해서였다. 이수성 전 총리, 조순 전 부총리 등 유력인사와 기업인, 문화예술단 등 1만여명의 한국인들이 다녀갔다. 선양시는 20억달러(계약기준)의 외자유치 '전리품'을 챙겼다.
이곳은 삼보컴퓨터와 LG전자 명함만 있으면 어디서든 외상이 가능할 만큼 한국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두 기업만 합쳐도 선양시 전체 수출의 50%를 차지한다. 삼보컴퓨터 선양법인 김규태(金圭泰) 부총경리는 "행사기간 중 이용태 회장에게도 공작기계 제조 국유기업 인수와 화력발전소 민영화 지분참여 제의가 있었다"며 "최근 국유기업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북3성의 성장전략 2호는 중공업·부품산업의 기지로 만드는 것. 이는 중앙 정부의 수입대체 전략을 반영한 것이다.
선양시정부는 부품·장비산업 유치를 위해 특별팀까지 편성, 현대차 등 한국·일본 기업을 순례했다. 선양시 경제기술개발구 왕맹리(王猛力) 부국장은 "선양에는 BMW·혼다 등 세계 500대 기업 중 21개가 들어와 있다"며 "자동차부속가공업, 장비제조업 등을 집중 유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고도성장으로 부품소재 중간재 설비 등 자본재 수입이 급증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를 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게 중국 당국의 전략이다. 지속성장을 위해 중국 대륙을 '풀 세트 생산체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곧 당면할 최대 위협인 셈이다.
전략적 구조개혁과 균형성장으로 성장엔진의 출력을 높이려는 이러한 노력은 동북3성 뿐이 아니다. 국유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작년 1∼9월 외국의 중국기업 M&A 투자액은 2002년의 2배에 달한다. 성과급과 선진적 지배구조 도입이 국유기업들에게 보편화하고 있고, 수익을 못 내면 퇴출되는 적자생존 원리도 정착되고 있다.
올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의 '1호문건'(가장 우선적인 정책과제)도 농민수입 증대 등 취약계층과 취약지구에 대한 우선적인 성장 지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장규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은 '불균형 발전'이라는 개방시대 부정적 결과물과 '비효율적 자원배분'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잔재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외자유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명실상부한 대륙형 경제체제를 구축하는데 따르는 진통"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선양=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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