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겨울 특이한 영화 한편이 개봉했다. 17세기 영국 귀족의 정원을 한 화가가 12장의 화폭에 담아내면서 귀부인과 섹스를 하다 결국 귀족도 죽고 자신도 죽는다는 영화다.추리소설 같은 진행에 고풍스러운 화면, 여기에 깔리는 클래식 음악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독은 피터 그리너웨이(62)였고, 제목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이었다. 19일 개봉하는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그리너웨이 감독의 1988년 작품이다.
제목만큼이나 영화는 알쏭달쏭한 블랙코미디다. 영국의 한 해변 마을에서 여자 3대가 각자의 남편을 차례로 물에 빠뜨려 죽여버린다. 61세의 할머니 씨씨1(조앤 프로라이트)은 ‘영계’를 밝힌 남편을 욕조에 빠뜨려 살해하고, 40세의 딸 씨씨2(줄리엣 스티븐슨)는 자신에게 성적으로 무관심한 남편을 바다로 데려가 죽인다. 19세의 손녀딸 씨씨3(졸리 리차드슨)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영을 전혀 못하는 바람둥이 남편을 수영장에서 익사시킨다. 한마디로 여자들 마음에 안 드는 남편은 모두 죽는다.
극단에 선 페미니즘 시각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는 감독과 관객의 즐거운 지적게임으로 보는 게 상책이다. 영화 곳곳에 수많은 상징과 은유와 기호가 숨어 있어 이들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퍼즐 같은 영화가 있을 수도 있구나’ 싶다.
먼저 영화에는 1부터 100까지 숫자가 끊임없이 출몰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여자 아이가 줄넘기를 하면서 숫자를 100까지 센다. 별 100개에 붙인 이름이란다. 그리고는 진짜 숫자의 향연이다. 놀이방 벽에 ‘14’, 죽은 새 시체 위에 ‘17’, 씨씨들이 사는 저택에 ‘55’, 씨씨2가 남편을 익사시킬 때 나타난 마라톤 선수들의 가슴팍에 ‘70’…. 영화 막판 씨씨 3대가 탄 배에서 발견되는 ‘100’까지. 이 세상은 숫자라는, 어쩌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상징체계로 뒤범벅돼 있다는 뜻일까.
영화는 또한 풍성한 과일과 이를 갉아먹는 갑각류 곤충을 즐겨 대비시킨다. 다양한 과일이 19세기 정물화처럼 먹음직스럽게 풀밭 위에 가득 펼쳐지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곤충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기분 나쁘게 생긴 벌레의 꼬물거림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씨씨들이 하나같이 뚱뚱한 남자를 싫어한 것을 보면, 과도한 식욕과 성욕을 위시한 온갖 탐욕에 대한 감독의 경고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씨씨들은 사마귀를 닮았다.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2세가 잉태되자마자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수컷을 먹어치움으로써 자신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그 무시무시한 암컷 사마귀들…. 더욱이 씨씨3은 임신까지 했으니 어쩌면 ‘여자는 인류의 미래’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도 남자 화가는 죽었지만 그의 씨는 귀부인 뱃속에서 고이 자라고 있었으니…. 1988년 칸영화제 예술공헌상 수상작. 18세 관람가. 19일 개봉.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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