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某)는 '누구라고 정할 수 없다'는 뜻의 한자다. 신문기사에서 '김모 씨' '모 기업'처럼 성(姓) 뒤에 붙거나 명사 앞에 놓여 '아무개' '어떤'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최근에는 영어 알파벳 이니셜이 '모'를 대체하고 있다. 'A씨' 'B기업' 'C기관'식이다. 익명 처리에도 기준은 있다. 전체 기사 내용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당사자들이 공개를 꺼릴 경우 실명은 가려진다. 취재원 보호도 중요한 이유다.근래에는 언론보도 피해로 인한 민·형사상 소송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익명 처리 이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익명 처리가 소송 회피를 100%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짐작 가능하고, 그들이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할 경우 배상 가능성은 높다.
언론 뿐만 아니다. 검찰, 경찰 등도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파장이 큰 내용을 발표할 때면 유효적절하게 익명을 사용한다. 지난 6일 배포된 경찰청 보도자료에는 불량 단무지·만두소 공급업체명이 'H·M·P·Y·W식품' 등으로 표기돼 있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한, 불량 단무지 만두소를 납품받아 만두를 제조한 25개 업체는 아예 일괄적으로 A사∼Y사로 표시했다.
불량만두 파동은 언론의 익명 처리 관행을 되돌아보게 한다. 언론과 경찰은 수사결과 발표 당시 선의의 피해업체 발생 가능성과 명예훼손 우려 때문에 불량 만두소를 납품받은 업체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위법성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업체명을 공개했다가는 불량 만두소인줄 알았던 업체나 그렇지 않았던 업체 모두 도매금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일부 업체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업체명을 공개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배수의 진까지 쳤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거센 공개 요구에 직면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업체 명단을 발표하자 언론은 업체명은 물론 제품명까지 보도했다. '선의의 피해업체 보호'를 명분으로 한 명단 비공개 입장은 '국민 건강권 보호'를 내세운 공개 요구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에는 만두 기피 신드롬이 확산되고 불량 만두와 관련이 없는 업체들마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명단 공개의 부작용도 나타나 대구의 한 만두 제조업체는 "식약청이 불량 업체를 늦게 공개해 선량한 업체들이 더 큰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급기야 식약청 발표 명단에 포함된 30대 만두 제조업체 사장은 개인적인 억울함과 정부에 대한 원망을 남긴 채 한강으로 투신 자살했다.
언론은 시종일관 불량만두 업체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했어야 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해 모두 공개해야 했을까. 불량만두 업체를 계속 익명 처리했다면 정상 재료를 쓰고도 도산 위기에 처하는 업체나 자살한 30대 만두 제조업체 사장과 같은 선의의 희생자가 나왔을까. 처음부터 불량만두 업체를 공개했다면 우리 사회의 만두 기피 현상이 최소화하고 전체 만두업체로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논란은 분분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불량만두 파동을 통해 언론이 그동안 너무 익명을 안전판 삼아 안주해 있었고, 그로 인해 잠시나마 국민 건강권 보호라는 큰 가치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 확인된 점이다. 불량만두 파동은 익명 처리에 있어 언론이 겪을 수 있는 딜레마를 확인시켜준 동시에 언론 본연의 기능을 새삼 환기시켜준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황상진 사회 1부 차장대우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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