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이트에서 ‘강리나’라는 이름을 치면 두 개의 직업이 뜬다. 설치미술가 그리고 영화배우. 전자는 현재의, 후자는 과거의 직업이다. 90년대 중반에 은퇴했고 벌써 불혹의 나이가 된 그녀는, 최근 어느 일간지 기사에 의하면 개인전을 준비하는 아티스트였다.미대 졸업 후 1987년에 데뷔한 그녀의 활동 기간은 1996년까지 딱 10년. ‘서울 무지개’의 광기 어린 연기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20여 편의 영화에서, 정말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묘한 표정과 고감도 연기를 보여준 그녀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하다.
그녀가 데뷔하던 80년대 말은, 80년대 충무로의 주류였던 에로티시즘 영화가 서서히 하강하던 시기였다. 이때 등장한 강리나라는 배우는 다분히 시대를 앞서나간 측면이 있다. 그녀의 이미지는 당시 마광수 교수가 주장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던 ‘야한 여자’와 거의 완벽히 겹쳐진다. ‘서울 무지개’ 외엔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지만, 그녀가 아직까지도 꾸준히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건 그런 이유다.
그녀는 영화 속 캐릭터보다는 배우 자신이 지닌 색깔로 어필했다. ‘서울 무지개’의 산발한 머리, 지적이면서도(그녀는 성 과학을 연구한 박사다) 섹시했던 ‘클라이막스 원’, 팬시함과 도시 여인을 내세웠던 ‘러브러브’, 백치미의 극치였던 ‘변금련’, 그리고 그녀의 에로틱함이 원숙함을 겸했던 ‘빠담풍’.
아마도 강리나 만큼 폭넓은 ‘성애’를 표현했던 여배우는 없을 것이다. 당시 ‘변강쇠’ 시리즈와 ‘사노’에서 원미경이라는 여배우를 섹스 심볼의 자리에 올려놓으며 ‘애마부인’의 정인엽 감독과 함께 80년대 최고의 에로티시즘 감독으로 평가받던 엄종선 감독은 자신의 차세대 파트너로 강리나를 선택했다. 강리나가 이전의 여배우들과 가장 달랐던 부분은.
그녀는 성을 유쾌한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이미지의 마스크를 지녔다는 점이다. 그녀는 만화 캐릭터를 스크린으로 성육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
한희작(러브러브)이나 배금택(변금련) 같은 성인만화 작가들의 여주인공들이 강리나를 통해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었던 게 그 증거. 그녀는 과장되고 황당하며 조금은 민망할 때도 있는 엽기적 상상력의 섹스 컨셉을 큰 무리 없이 소화했고, 관객들은 그녀에게서 ‘야함’뿐만 아니라 ‘즐거움’ 또한 얻어갈 수 있었다.
흔히들 ‘서울 무지개’를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그녀의 베스트를 이야기한다면 ‘변금련’ 1편과 2편을 들 수 있다. 순진한 시골 여자가 마초적이며 성폭력적인 사회에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녀는, 청순하면서도 극도의 성감을 지닌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녀는 영화배우로서의 경력을 서서히 접는다. ‘에로 배우’라는 이미지는 그녀가 멜로에도 일가견이 있는 연기자라는 사실을 망각시켰고, 그녀는 서서히 영화계를 떠나 아티스트의 길로 접어들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김부선처럼, 그녀를 다시 스크린 속에서 만나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 하지만 이런 바람이 필자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김형석 월간 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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