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정치 약속은 대국민 쇼였나. 원 구성을 둘러싼 여야의 양보 없는 대치가 장기화 하면서 17대 국회가 초반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행정수도 이전, 경제침체 등 화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일주일째 '자리다툼' 중이다.여야는 서로를 향해 "아직도 1당으로 착각하고 있다", "승자가 독식하겠다는 거냐"는 등 감정적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장기 공전사태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원 구성 협상의 핵심적 걸림돌은 법사위원장을 어느 당이 가져 오느냐와 국회 예결특위를 일반 상임위 로 전환시킬지 여부.
우리당은 법사위원장을 달라는 한나라당측 요구에 대해 "개혁을 원천 봉쇄하려는 속셈"이라며 맞받아친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야당이 법사위를 맡으면 개혁법안이 한 개도 통과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법사위를 끝내 고집할 경우 협상에 응하지 않기로 하는 등 배수진을 쳤다.
한나라당은 "법사위는 여당이 수의 힘으로 밀어 부치는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게이트 키퍼'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위원장직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우리당이 힘이 있으니까 다 먹겠다는 생각"이라며 "우리는 전례에 따라 법사위만 지키겠다는 것인데 우리당은 대안 없이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당은 예결특위의 상임위 전환시기를 못박아 달라는 한나라당 요구에 대해서도 "상임위원장 배분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술"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총선 직후 여야 대표회담에서 국회 개혁특위를 구성한 뒤 거기서 논의해 시기를 결정키로 하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한나라당 입장도 완강하다. 한나라당은 우리당이 예결특위의 일반 상임위화를 총선공약으로 내세웠고, 양당 대표회담과 원내대표 회담 등에서 합의해놓고 이제 와서 발뺌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국회 개원 지연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양당 지도부를 상대로 1인당 피해 배상액을 1,000원으로 하고 1,000명의 원고를 모집하는 '천인소(千人訴)'를 추진키로 했다. 17대 국회 원 구성은 이래저래 혼미한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우리당, 상임분과委 구성
원구성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열린우리당이 14개 '상임분과위원회'를 구성, 독자적인 원내활동을 시작했다.
예비상임위 격인 분과위에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건설교통위. 30여명 이상이 신청해 이 중 15명이 선택됐다. 분과배정에 참가한 이목희 의원은 "신행정수도 이전, APEC회의 개최, 주한미군부대이전 등 굵직한 지역 현안 사업을 챙기려는 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소외 상임위'로 여겨졌던 문화관광위 역시 경쟁률이 높았다. 김재홍, 민병두, 정청래, 우상호 의원 등 언론개혁 강경파가 전면 배치됐다. "외교가 국가의 생명이자 미래"라며 통일외교통상위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신기남 의장은 '바쁜 일정으로 정상적인 상임위 활동이 어렵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초지를 관철했다. 김혁규, 한명숙 의원도 통외통위를 택해 지도부급 상임위로 자리를 굳혔다.
법조계 출신 의원들의 다양한 선택도 눈에 띈다. 민변 사법위원장 출신의 문병호 의원은 "소외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며 보건복지위를 신청, 배정됐고, 한국노총 고문변호사였던 이상민의원은 조세제도 개혁을 위해 재경위를 택했다.
국방위는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몰렸다. 김덕규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홍재형 정책위원장과 김근태, 문희상, 유재건 의원이 포함됐다. '대체복무제 입법'을 추진해 온 초선의 임종인 의원이 중진들 사이에서 과연 어떤 목소리를 낼 지도 주목된다.
그러나 한 의원은 "주한미군감축 등 민감한 현안이 쌓여 있는 국방위에 상임위 활동에 충실하기 어려운 중진들이 배치돼 자칫 업무 공백이 생길 지 모른다"며 우려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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