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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우편배달부 역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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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우편배달부 역 박해일

입력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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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의 도심 공원에서 만난 박해일(27)의 미소는 수줍고 아름다웠다. 지난해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음산하고 중성적인, 그래서 기분 나쁜 살인용의자의 이미지는 오간 데 없었다. ‘질투는 나의 힘’ ‘국화꽃 향기’ 등을 거치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 스타답지 않게 그는 수줍었고, 정확히 스물 일곱 살 나이만큼 아름다웠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이 그를 해맑은 섬마을 우편배달부로 캐스팅한 것은 옳았다.

‘인어공주’는 지금의 딸(전도연)이 스무 살 시절의 어머니 조연순(전도연 1인2역)과 아버지 김진국(박해일)을 만난다는 행복한 판타지 시간여행.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같은 ‘웰 메이드’ 상업영화의 계보를 잇는 이 작품에서 박해일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전도연이 징그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로 ‘인어공주’를 이끌고 나갔다면, 박해일은 그 시간여행 한복판에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멋진 남자이자 젊은 아빠였다.

박해일은 아버지 얘기부터 꺼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이 시대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것, 극중 늙은 아버지(김봉근)가 “이제는 쉬고 싶다”며 소주잔을 기울일 때, 자신도 아버지(55) 생각에 울었다는 것. “아버지가 사업에 부도가 나서 지금은 회사택시를 운전하고 계세요. 몇년 전 아버지와 목동의 한 대폿집에서 술을 같이 마실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비애나 처량함 같은 것을 느꼈어요. 아버지는 소주에서 쓴 맛을, 저는 막막함을 느낀 거죠. 물론 지금은 덜 궁상맞아요(웃음).”

그런 만큼 ‘인어공주’의 젊은 아빠 연기는 새롭고 신이 났다. “아버지의 젊은시절도 이랬을까” 싶었던 거다. 까막눈 조연순에게 국어책과 공책과 연필을 주며 “이름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라고 말하던 우편배달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잘난 체 하고 싶어” ‘버스, 오라이~’라며 미국 말 흉내를 내던 그 스물 세 살의 청년. 섬마을 돌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박해일의 환한 모습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스쿠터를 타고 가던 한석규를 닮아 있다.

“그러고 보면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와는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때는 봉준호 감독님이 1년 반 전에 미리 살인용의자 역으로 저를 점 찍은 상태였고, 저는 99년 연극 ‘청춘예찬’의 불량기 가득한 고교생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기만 하면 됐죠. ‘인어공주’는 달라요. 현재의 남루한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봄날 햇살과도 같은 깨끗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해녀 조연순이 물질하는 바닷가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너무 착해서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남자. 영화가 원하는대로 하는 게 배우죠.”

한때 MBC ‘테마게임’의 연출부 막내 생활을 거쳤고, 어린이극단 무대에 수없이 섰다가, 99년 연극 ‘오델로’로 정식 데뷔한,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온 박해일. 차기작 ‘소년, 천국에 가다’(감독 윤태용)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고 한다.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결국 다른 미혼모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남자 얘기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계속 깨뜨려 나갈 거에요.” 그의 소담한 말투에는 배우로서 앞날을 기대해볼 만한 믿음이 배어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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