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 합의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북이 상대 경비함정과의 무선통신 호출부호를 남측은 '한라산', 북측은 '백두산'으로 정한 점이다. 따라서 남측 해군 함정은 앞으로 북측 해역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될 경우 무선통신을 이용해 "백두산 백두산, 여기는 한라산. 감명도는?"이라고 호출하고, 북측은 이에 대해 "한라산 한라산, 여기는 백두산. 감명도 다섯"이라고 응답하게 된다. 감명도는 1∼5까지 숫자로 대답하고 감명도가 낮으면 출력을 높이라고 요구할 수 있다. 또 북방한계선(NLL) 해상에 양측 함정이 2척 이상 기동할 때는 지휘함정들끼리만 교신하되 상대방을 자극하는 불필요한 발언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동안 양측은 군사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 판문점에 설치된 직통전화 2회선 및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일직장교를 연결하는 직통전화를 우회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에 원활한 교신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선통신망 개설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확정됨으로써 서해교전이나 연평해전 같은 불상사는 막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합의사행 이행을 위해 남북은 14일 오전9시 NLL 해상의 남측 연평도―북측 육도 등 남북 각각 5곳에 위치한 함정끼리 무선통신 시험을 진행키로 했다.
이와 함께 남측 2함대사령부와 북측 남포의 서해함대사령부를 연결하는 유선전화망을 8월12일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도로 동쪽 5m 부근 군사분계선(MDL)상에서 잇기로 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양측 해군 사령부를 잇는 사실상의 핫라인까지 개설돼 남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실질 수단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남측은 양측 함대사령부를 직접 케이블로 연결하자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북측은 경의선 철도·도로 노선에 최근 설치된 통신선로를 양측이 필요한 대로 연장해 사용하자고 제안해 결국 북측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유선전화망은 상시 송·수신이 가능케 유지된다.
양측은 역시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사항인 MDL에서의 선전 중단을 15일 0시부터 시행키로 했다. 방송용 확성기와 시각선전물을 8월15일까지 철거한다는 기존 합의도 재확인했다. 또 민간 소유의 종교시설물은 상대방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차단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해 MDL 일대에 설치한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불상 등도 대거 이전 또는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선전물 제거 완료 7일 이전에 대상목록을 교환하고 이를 근거로 결과를 확인한 뒤 언론에 발표하는 절차를 밟아 이번 합의서의 이행결과를 검증키로 하는 데도 의견일치를 이뤘다.
휴전선 일대가 선전 무공해지대가 됨으로써 군인과 군사시설 이외에 남북 간 대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무박 3일 강행군… "정신 잃을까 노심초사"
10일 오전 8시30분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실무대표접촉을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가는 문성묵(국방부 회담운영팀장) 대표단장 등 남측 대표단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장성급군사회담의 분위기를 근거로 하루 이틀이면 접촉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던 이들은 앞으로 벌어질 '무박 3일'의 초강행군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실제로 회담장소인 개성시 자남산여관에 도착한 남북 대표단은 오전 10시부터 회담을 술술 풀어갔다. 함정 간 무선통신 용어와 깃발신호 세부내용, 철거대상 선전용 시설 지정 등 난제가 쉽게 해결됐다.
그러나 걸림돌은 의외의 사안에 포함돼있었다. 바로 MDL 남측지역에 건립돼 있는 종교시설물의 이전 여부였다. 북측은 눈에 보이지 않은 곳으로 옮길 것을 원했지만 남측은 "민간종교단체가 설치한 것이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양측은 거의 24시간 동안 설득전을 펼치다 남측이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한 발짝 물러났다.
남측 대표단이 "이제는 집에 가겠구나"라고 안도하는 순간 이번엔 남북 해군 함대사령부 간 직통선로가 걸림돌이 됐다.
남측은 직통라인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기존선로 개선을 고집했다. 다시 하루가 흐른 뒤 해상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든 통신선로 구축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남측이 북측 입장을 받아들였다. 또 부속합의서 조문을 일일이 따져가며 작성하는 데도 반나절이 소비됐다.
문 대령은 "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실무급 접촉이 이뤄질 때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다"며 "정신이 몽롱해 엉뚱한 협상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고 소회를 털어 놓았다.
/김정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