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제럴드 더럴 지음·김석희 옮김
웅진닷컴 발행·1만1,000원
어떤 책은 읽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잊고 있던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게 하거나 놓치고 지나치던 일상과 주변의 숨겨진 광채를 문득 환하게 드러내 마음 가득 부챗살처럼 퍼지는 빛을 선사하는 책. 영국의 야생동물 연구가 겸 작가 제럴드 더럴(1925∼1995)의 대표작 '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은 그런 매력으로 넘친다.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러운 번역도 읽는 즐거움을 더 한다.
1956년 처음 나온 이 책은 더럴이 1930년대의 5년 간 지중해의 작은 섬 코르푸에서 온갖 야생동물에 둘러싸여 보낸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쓴 것이다. 코르푸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더럴이 그곳에서 만났던 고집스럽지만 인심 좋은 사람들, 갖가지 곤충과 동물 이야기가 더럴 가족의 소란스럽고 유쾌한 일상과 어우러지며 상쾌하게 펼쳐진다.
더럴이 열 살 때, 가족은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를 피해 코르푸로 이사한다. 눈부신 햇살, 짙푸른 바다, 올리브숲과 포도밭이 반기는 그곳에서 더럴은 집 마당에 무성하게 우거진 꽃과 덤불 사이를 돌아다니는 곤충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자연 탐험을 시작한다.
더럴은 섬의 온갖 동물을 집으로 데려와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키운다. 그렇게 수집한 동물과 곤충이 수백 종이 넘었다니 집안이 어떠했을지는 안 봐도 훤하다. 한마디로 난장판. 까치들은 음식을 훔쳐먹고 색색깔 잉크 병을 엎질러 집안 가득 발자국 전시회를 한다. 비둘기가 집안에서 비행 연습을 하고 욕조에는 물뱀이 헤엄치고 전갈들이 식탁 위를 기어다닌다.
홀로 네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는 그래도 태평하기만 하고, 더럴의 두 형과 누나는 동생의 별난 취미에 투덜대면서도 왁자지껄 코미디 같은 일상을 즐긴다.
이 책에는 더럴의 여러 동물 친구들이 등장한다.
애꾸눈 거북이 키클롭스 부인, 딸기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고 사람의 배 위에서 산책하기를 즐기는 또다른 거북이 아킬레스, 진흙 미끄럼 타기가 큰 낙인 늙고 덩치 큰 거북 '퐁당 영감', 음악에 맞춰 근사하게 춤을 추는 신경질쟁이 비둘기 카지모도, 도도하기 짝이 없는 올빼미 율리시스, 침입자를 용서하지 않는 호전적인 도마뱀 제로니모, 제로니모의 꼬리를 끊어버린 용맹스런 사마귀 시슬리, 개들에게 시비 걸기가 취미인 까치 형제….
어린 더럴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관찰한 여러 동물과 곤충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바닷가 모래톱의 얕은 물에 엎드린 채 파도에 떠밀려온 조가비를 대륙과 국가 모양으로 배열하며 지리를 공부한다든지, 달밤에 반딧불이 떼가 멋진 군무를 펼치는 가운데 돌고래 무리와 헤엄치는 등 더럴의 코르푸 시절을 수놓는 장면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어른이 된 더럴은 1959년 노르망디 앞바다의 영국령 저지 섬에 저지동물원을 설립, 곤경에 처한 동물들을 보살펴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했고, 1963년 '더럴 야생동물 보존 트러스트'를 만드는 등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운동에 헌신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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