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주한미군 1만2,500명을 2005년 12월 말까지 감축하겠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 왔다. 이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 2사단 재배치는 양국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신중하게 추진하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깬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약속 불이행을 지적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일부 보수 언론들은 모든 것을 우리 정부 탓으로 몰아세우기에 바쁘다.주한미군 조기 감축이 가시화하면서 안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미동맹 관계의 균열과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 약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주한미군 2사단 감축은 한미동맹 관계의 균열 때문도 아니고 안보공약의 약화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미국의 전략개념이 변하고 해외주둔군 개념이 바뀐 데 기인한다. 1971년의 7사단 철수가 '닉슨 독트린'으로 표현되는 전략개념의 변화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해외 주둔 미군을 일정 장소에 고정 배치해 하나의 목적에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 목표가 중국 봉쇄에 두어짐에 따라, 아시아 주둔 미군의 재배치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긴요하다. 중국을 겨냥해 해공군력을 강화해야 하므로 지상전력 위주인 주한미군의 재편은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기지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의 전략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중국 포위 전략이 구체화할수록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오산, 평택에 50년 이상 사용할 최첨단 영구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민이 원하면 내일이라도 철수"할 만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안보공백론도 힘을 받고 있다. 북한의 오판이 우려된다고 목청을 높인다. 자주국방을 앞당기기 위해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해 전력 증강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무기상들만 살판나게 생겼다.
주한미군 1만2,000여명이 나간다고 당장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고 휴전선을 넘어 쳐들어온다는 것인가? 2사단이 나가자마자 서울을 향해 장사정포를 쏘아대고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것인가? 북한이 아무리 극악무도한 정권이라 하더라도 정권 붕괴로 이어지고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을 선택할 것이라는 가정은 극단적이다. 극단적인 가정을 상정하여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20여년간 북한보다 3∼6배 이상의 군사비를 쓰고도 북한보다 군사력이 열세이고 대북억지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보수 성향의 래리 닉시는 이미 2000년 1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대담에서 "북한은 남침할 수 있는 공격능력을 상실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는 장사정포와 미사일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선제공격용이라기보다는 억지력 성격이다. 북한은 전시에 이들 무기로 우리의 대도시와 산업시설을 공격한다는 '대가치(counter―value)전략'에 기초한 '거부억지(deterrence by denial)'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북한 군사력의 열세를 반영한다. 남북 간의 군사력 격차가 벌어질수록 북한은 이런 비대칭적 전력을 늘려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투자하여 첨단무기를 도입해도 해결할 수 없다. 명중률 25%인 패트리어트 Pac-3 48기를 2조5,000억원을 들여 도입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기당 1억원 미만인 스커드B 미사일 12기만 추가 생산해 배치하면 패트리어트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러한 무모한 군비경쟁을 왜 하나? 결국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간 협상을 통해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와 군축을 통하는 것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안보는 군사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안보환경의 개선이 중요하다. 지금의 남북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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