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전공을 공부하다 보니 뇌신경에 흥미가 생겼고 내친 김에 의대에 진학할 욕심을 갖게 되었다. 취업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서가 아니라 뇌 활동과 관련된 기초 의학을 공부해보자는 소박한 생각이었다.그래서 2년 전 사설입시학원에 등록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엔 서먹하던 수강생들끼리 서로의 사정을 털어놓게 되는 과정에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유일한 대학생이었고 가장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학원을 찾은 이유는 나와 달랐다. 어떤 분은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며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는 명문대 출신도 많았고 석·박사 학위 소지자, 해외 유학파도 적지 않았다. 공통점은 인문, 자연 계열의 전공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커다란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정되고 적당한 소득이 보장되는 직장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친한 수강생 몇몇 사람에게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기초 의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 놓았다. 그랬더니 나보다 연배가 많은 그들은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있다고도 하고 또한 그런 분야에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기도 하였다.
2년이 지난 지금 교내를 둘러보면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광고가 더욱 많이 붙어있다. 특히 인문대, 자연대 건물에 이런 광고가 몰려 있다. 대학생 신분으로 다시 수험생의 길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듯 하다.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에 몰리고 있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취업난에 기초학문은 설 자리가 없다. 한 때 대학생은 매일 놀고 먹으며 지낸다는 의미의 '먹고 대학생'이란 말도 있었지만 요즘 대학생 중에 그런 학생은 없다. 그래도 취업은 이전보다 훨씬 어렵다. 대학 도서관은 시험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늘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4년간 준비한 전공으로 제대로 도전도 해 보지 못한 채 당장 취업을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수한 두뇌와 실력을 갖춘 기초학문 전공자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문제의 심각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태선 덕성여대 심리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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