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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0주년 홍승엽의 댄스 씨어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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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0주년 홍승엽의 댄스 씨어터 온

입력
2004.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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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춤만 추고 먹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한 꿈이다. 무용 시장이 워낙 좁은데다 춤판이라는 동네가 학연과 인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어 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춤 추려면 ‘왕따’ 당할 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다. 열심히 줄 잘 서고, 교수들 눈치 보고, 지원금 타내는 로비의 달인이 될 것. 그게 무용가 대부분의 생존법이다. 그래야 대학에 강사 자리라도 얻어서 기본생계를 유지하면서, 가끔 공연도 해 무용가 행세를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이처럼 척박하고 뒤틀린 풍토에서 안무가 홍승엽(42)이 이끄는 현대무용단 ‘댄스 씨어터 온’ (DTO)의 존재는 이질적이다. 춤만 추면서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대학교수 중심의 ‘모계 씨족사회’라는 빈정거림을 들을 만큼 학연의 거미줄에 결박된 춤 동네에서 그와 15명 단원들은 ‘독립군’ 또는 ‘모난 돌’에 가깝다.

처음에는 다들 얼마 못 갈 것이라고 했다. 3년을 버티니까 ‘기적’이라고 했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다. DTO의 무대를 기다리는 고정 관객이 생겼다. 초대권 한 장 안 뿌리고도 객석 점유율을 70%선까지 끌어올렸다. 국내 춤판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풍경이다.

DTO는 매일 1시부터 6시까지 연습실에 모여 땀을 흘리면서 매년 1~2편씩 신작을 발표해왔다. 남들이 돈 버는 시간을 작품 연습에 바치고, 나머지 시간에 레슨이나 객원 출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한다. 월급은 없지만, 오직 프로의 자부심과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밤에 만나 연습하는 여느 무용단의 ‘헤쳐 모여’ 식 작업방식과 비교하면 미련할 만큼 우직하다. 단원 되기도 어렵다.

정단원은 물론이고 연수단원도 홍승엽과 전 단원의 만장일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대무용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고정단원을 거느리고, 매일 연습하고 정당한 개런티를 받고, 꾸준히 공연하는 민간 직업무용단은 국내에서 DTO와 서울발레시어터, 유니버설발레단 정도가 있을 뿐이다.

DTO는 지금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 15편 중 ‘달 보는 개’ ‘데자뷔’ ‘다섯 번째 배역’ 등 우수 레퍼토리 6편의 주요 장면을 엮은 ‘모자이크’와 신작 ‘사이프리카’(Cyber Africa)를 17, 18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달 보는 개’와 ‘데자뷔’는 2000년 프랑스 리옹 댄스 비엔날레에 초청받아 5회 공연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과 함께 호평을 받은 작품. 당시 한국의 무용단으로는 1930년대 최승희 이후 처음으로 ‘르 피가로’에 큼직한 리뷰가 실렸다. 이 행사의 예술감독 기 다르메는 홍승엽을 ‘한국의 윌리엄 포사이드’라고 격찬했다. 윌리엄 포사이드는 지적인 안무작업으로 유명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무용가의 한 사람이다.

홍승엽은 낙관적이다. “10년 전보다 좋아졌고 앞으로 10년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더러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내 방식대로 작업하려면 어쩔 수 없다. 학교와 병행하면 아무래도 작품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은 머리 속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있다 해서 무용수가 그대로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꾸준한 연습과 앙상블이 필수다.” 스스로 좁은 문에 들어 선 예술가의 이 발언은 아마추어가 프로 행세를 하며 진짜 프로를 구박하기조차 하는 국내 춤판에서 “그래, 너 잘 났다”고 눈총받기 딱 좋은 소리다.

홍승엽은 겸손하다. 하지만 잘 났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다 뒤늦게 무용에 입문, 시작한 지 2년 만에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최고의 무용수로 떠올랐다. 한창 잘 나갈 무렵, 무용단 창단을 결심하고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가 3년 간 단원으로 뛰며 현장수업을 했다. 국제감각이 있고 프로다운 운영능력이 있는 직업무용단은 거기 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DTO를 만들었다.

한 속옷 브랜드의 TV광고에 모델로 출연해서 받은 돈으로 출발했다. 이후 매우 논리적이고도 감성적인 세련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평단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안무가’ 라는 찬사를 보냈다. 지난해 한 일간지의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분야 최고’ 조사에서도 한국 최고의 현대무용가로 뽑혔다.

DTO는 지난해 외교통상부 지원으로 핀란드와 덴마크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오는 9월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공연을 떠난다. 앞으로 지방과 해외공연을 늘릴 계획이다. 외국 유명무용단의 내한공연이 유독 많았던 올 상반기를 보내며 그는 이런 주문을 한다.

“높은 수준의 이들 무용단이 나오기까지 지원과 보호를 아끼지 않았던 사회체계가 있었음을 기억해달라.” 예술단체의 성장은 예술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최고의 직업무용단 DTO는 여전히 힘겨운 생존투쟁 중이다. DTO를 키우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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