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화제의 두 작품이 가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뜨거운 연극 ‘잘 자요, 엄마’는 참된 모성애에 대해, 서늘한 감동을 안기는 ‘허삼관매혈기’는 낳은 정과 기른 정에 대해 묻는다.
● 잘 자요, 엄마
마샤 노먼의 1982년작 ‘잘 자요, 엄마’(연출 심재찬)는 마치 윤소정을 위해 쓴 작품 같다. 담배를 피워 물고 싱크대에서 과자 봉지를 뒤지는 첫 장면부터, 눈물 섞인 소리로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마지막 장면까지, 윤소정과 델마는 뗄 수 없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 덜렁대고 거짓말도 잘 하지만 험한 세상 속의 유일한 피난처인 엄마 자체다. 대사를 몇 번 씹는 실수까지도 자연스럽다.
수건과 테이블보 등이 널부러진 무대는 교외의 시골집을 그럴싸하게 보여준다. 가족사진을 올려 놓은 탁자부터 사다리 달린 다락까지 꼼꼼하게 만든 무대로 자살을 하겠다고 덤비는 나이 든 딸 제시(오지혜)와 제시를 말리려는 ‘철 없는 엄마’ 델마(윤소정)가 들어선다.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델마의 소유욕, 그리고 결혼과 자식 교육에서 거듭 실패를 맛보며 나락으로 떨어진 제시의 좌절감이 객석을 짓누를 듯 하지만 행간에 놓인 진부하고 누추한 일상이 빛을 발한다. 작가의 섬세하고 따뜻하며 유머 가득한 대사 덕분이다.
관객은 델마 역의 윤소정을 엄마 삼아 자신의 엄마와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눈다. 가루비누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냄비 하나도 못 찾아 싱크대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엄마지만 가슴 속에 담아둔 사랑을 언제라도 꺼낼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 말이다. 엄마와 딸의 뒤늦은 화해를 보면서 눈자위를 닦는 관객, 콧물과 눈물로 뒤범벅된 배우들이 한 덩어리가 되는 감동이 작지 않다. 7월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 허삼관매혈기
아버지의 따뜻한 등이 그립다면 ‘허삼관매혈기’(위화 작ㆍ강대홍 연출)의 허삼관(이기봉)을 만나볼 일이다. 허삼관이 피를 팔 때마다 하나씩 내려오는 붉은 등이 마침내 무대 천장을 가득 메우는 마지막 장면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명장면이다.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피를 팔았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장면은 이 땅의 아버지들과 부성애를 그리워하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축전 메시지라 할만하다.
‘허삼관매혈기’는 단출한 무대 장치, 아들과 아버지 사이를 비추는 섬세한 조명을 빼고는 오로지 배우의 연기력과 줄거리에 의존한다. 극단 미추의 배우들은 담담하고 절제된 연기로 중국 현대사의 장삼이사를 보여준다. 50일 넘게 죽만 먹은 가족들을 위해 피를 팔고, 배를 곯는 자식들을 위해 잠들기 전 홍소육 요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며 상상으로라도 아이들 배를 채워주려는 허삼관의 코끝 찡한 부성애 속에 격동의 중국현대사가 녹아 있다.
아내 허옥란(서이숙)이 남편 몰래 피우는 바람, 남편 허삼관이 피우는 맞바람 속에 벌어지는 질펀한 웃음도 즐겁지만, 이 작품의 진짜배기 감동은 웃음 뒤에 숨은 애틋한 가족애.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내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만 흘려 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는 허삼관의 대사를 어찌 흘려 보낼 수 있을까. 다부지고 억척스런 어머니 허옥란과 아버지 허삼관이 손을 잡고 무대를 떠나는 여운이 길게 남는다. 7월4일까지 동숭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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